마지막(?) 법원행정처장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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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법원행정처장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대법관이 아닌 판사가 대법원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대법관을 보좌하는 재판연구관이거나, 아니면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소속 직원일 가능성이 크다. 재판연구관은 격무에 시달리는 대법관들을 돕는 것이 주된 임무다. 비록 직접 재판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고심 재판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반면 법원행정처에서 실·국장 및 심의관으로 일하는 법관은 재판과 전혀 무관하다. 이른바 사법행정 업무에 종사하며 안으로는 전국 각지의 하급심 법원, 밖으로는 삼권분립의 다른 두 축인 행정부·입법부를 상대하는 것이 법원행정처 직원의 핵심 직무라고 하겠다. 그래서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는 그냥 ‘공무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15일 약 2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다. 법원행정처 제공 대한민국에서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 사법부가 출범한 것은 광복 후 3년이 지난 1948년의 일이다. 이듬해인 1949년 8월15일에는 대법원 산하에 법원행정처가 신설됐다.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과 그에 따른 사법부 독립을 실현하려면 재판의 독립은 물론 사법행정의 독립도 필요하다는 이론에 따른 조치였다. 법원의 인사·예산·시설관리·홍보 등 행정 업무를 처리하려면 별도의 조직이 필요한데, 이를 행정부 소속으로 할 수는 없는 만큼 대법원장이 산하에 법원행정처를 두고 그 조력을 받아 사법행정을 지휘·감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이 대법관들 중에서 지명하는 인사가 겸임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새 법원행정처장으로 내정된 박영재 대법관이 13일 오후 퇴근하며 취재진을 의식한 듯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박 대법관은 16일부터 법원행정처장 직무를 시작했다. 뉴시스 법원행정처 차장은 차기 대법관 ‘0순위’로 통하는 요직이다. 어디 그뿐인가. 법원행정처에서 실·국장 또는 심의관으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엘리트 판사’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사법행정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법관들 중에서도 능력이 출중한 이가 사법행정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법원 바깥의 진보 정당은 물론 개혁 성향 판사들 사이에는 ‘법관의 관료화를 부추겨 판결 공정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원행정처가 ‘출세 지향적 판사들의 양성소’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사법 개혁 일환으로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을 전담할 새 기구 설치를 추진하는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존재한다.

사법부는 ‘사법행정의 독립을 위해선 지금의 법원행정처가 존속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마침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15일 약 2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민주당의 법원행정처 폐지 추진 방침 등을 염두에 둔 듯 천 대법관은 “사법부가 배제된 사법 개혁은 전례가 없다”며 여당을 향해 “사법부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새 법원행정처장은 2024년 8월 취임한 박영재 대법관이 맡을 예정이다. 여당의 법원행정처 폐지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경우 박 대법관은 법원행정처 역사상 마지막 처장이 될 수도 있다. ‘사법부 독립에는 사법행정 독립도 포함된다’는 당연한 명제마저 무시되는 요즘 한국의 현실이 낯설다 못해 두렵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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