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엽 처장(사법연수원 21기)이 “사법부가 배제된 사법개혁은 1987년 헌법 체제 이후 사법제도 개편 관련 역사를 보아도 전례가 없다”며 “사법부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기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고 당부했다.
천 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에 대해 “불법비상계엄 사태”라고 표현하며 “이로 인해 시민들의 사법접근성 제고를 위한 행정처의 제도 개선 작업이 무산됐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2년간의 법원행정처장 업무를 마무리한 천 처장은 대법관으로 재판 업무에 복귀한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다. 대법원 제공 천 처장은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 무궁화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천 처장은 “지난 2년은 사법부로서도, 저 개인으로서도 참으로 다사다난한 시기였다”며 말문을 연 뒤 “2024년 사법부 불신의 주요원인이던 재판지연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 법관 사무분담 장기화, 법원장 재판부 등 다양한 방안을 시행했고 그 결과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임기 2년차인 지난해는 재판지연 해소 성과를 토대로 시민들의 사법접근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준비했었다며 “2024년 연말 발생한 불법비상계엄 사태로 개선작업이 무산된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천 처장은 “천만다행으로 오랜 독재의 역사를 극복하고 시민혁명을 통해 쟁취한 1987년 헌법 체제에서 자란 시민들의 투철한 호헌의식과 국회의 공조 덕분에 계엄사태는 조기 해소됐고 사법부 독립과 사법권도 온전히 유지될 수 있었기에 사법부는 다시 한 번 시민들에게 빚을 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계엄과 관련된 불법행위의 사법적 처리는 종국적으로 재판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어 사법부로서는 재판 이전에 이에 대해 법적 평가를 할 수 없는 운신의 제한이 있다”며 “다만 직접 재판을 담당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법원행정처장 지위에서 사법부의 중론을 반영해 국회를 제외한 헌법기관으로서는 최초로, 또는 반복해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지적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 출범 후에 사법부가 개혁의 동반자가 아닌 대상으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게 됐다며 “국회 및 정부와 상호 존중 하에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을 추진하려는 우리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돌이켜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저의 불민함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므로 사법부에 불신을 갖게 된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천 처장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탱하는 균형추로서 삼권분립과 사법독립은 헌법 핵심 가치에 속하고 이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입법권도 예산권도 없는 사법부에 대한 존중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며 “사법부가 개혁의 동반자로 참여해야 한다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가 배제된 사법개혁은 1987년 헌법 체제 이후 사법제도 개편 관련 역사를 보아도 전례가 없다”며 “이는 재판 등 사법서비스의 이용자이자 당사자인 시민들을 비롯한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하게 됨으로써 사법 접근권의 실질적인 축소 및 후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부의 목소리는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사법개혁은 시간과 자력을 겸비한 당사자에게 무한소송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분쟁해결이 사실심에서의 한 번의 재판으로 신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에 부응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사법부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기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 1992년 사법연수원을 21기로 수료한 천 처장은 1995년 서울지법 동부지원 판사로 임관해 서울지법·부산지법 판사, 부산고법·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2021년 5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됐다.
천 처장은 2024년 1월 조희대 대법원장에 의해 법원행정처장에 임명됐다. 이날 행정처장 임기를 마친 그는 대법관으로서 대법원 재판 업무에 복귀한다. 그의 대법관 임기는 내년 5월7일까지다.
홍윤지 기자 h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