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 탈출이 환율 올렸다”… 작년 29조 ‘달러 엑소더스’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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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탈출이 환율 올렸다”… 작년 29조 ‘달러 엑소더스’의 정체
한국은행 “해외 주식 투자 급증이 달러 수요 부추겨 환율 상승 요인”
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증시와 환율을 모니터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보다 해외 주식 투자 등으로 빠져나간 달러가 더 많아지면서 국내 거주자들의 ‘해외 투자 열풍’이 최근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핵심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중 거주자의 해외 투자 등으로 인해 국내 외환시장에서 빠져나간 외화 순유출 규모는 무려 196억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2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 기간 순유출 규모가 5억달러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유출 폭이 약 40배 가까이 급증한 셈이다.

권용오 한국은행 국제금융연구팀장은 이날 열린 ‘외환시장 공동 정책 심포지엄’에서 최근의 환율 상승이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경상수지(수출 등) 흑자 규모가 해외 투자 수요보다 커서 시장에 달러가 넘쳐나는 구조였다. 하지만 2024년 이후로는 이 공식이 깨졌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경상수지는 896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고 외국인의 국내 증권 투자로도 319억 달러가 들어왔다. 수치상으로는 달러 공급이 넉넉해야 정상이다.

문제는 유출 규모였다. 거주자의 해외 증권 투자가 전년 동기 710억 달러에서 1171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여기에 국민연금 등 기관의 해외 투자까지 가세하며 유입된 달러를 모두 상쇄하고도 남는 ‘달러 초과 수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한미 간 금리 격차가 환율 상승의 주범이라는 지적이 많았으나 한은의 시각은 달랐다. 권 팀장은 “금리 역전에 따른 자금 유출 동향을 볼 때, 최근의 환율 급등을 단순히 금리 차이 때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한국과 미국 간의 경제 성장률 격차와 주식시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의 차이가 환율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보다 기대 수익률이 높은 미국 증시 등으로 자금을 옮기는 과정에서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수요가 몰렸고, 이것이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권 팀장은 “거주자들의 투자 행태가 최근 외환 수급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며 “수출 기업들이 달러를 바로 환전하지 않고 보유하는 '환전 지연' 현상 등도 외환 공급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외환시장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선 결국 국내 자본시장의 매력을 높이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개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굳이 달러로 바꿔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국내 증시의 수익성이나 성장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최근 국내 복귀 투자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등 ‘국장 살리기’에 나선 것도 이러한 외환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강경훈 동국대 교수,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 학계와 관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급변하는 외환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과제를 논의했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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