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리 갤러리,이상협 개인전 ‘은빛, 머무는 자리’ 전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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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리 갤러리,이상협 개인전 ‘은빛, 머무는 자리’ 전시 개최
사진= 비트리 갤러리 제공 비트리 갤러리 서울점에서는 새해 첫 전시로 이상협 작가의 개인전 ‘은빛, 머무는 자리’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은공예의 섬세한 미감과 조형적 사유가 어우러진 작가의 작업 세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은의 표면에 새겨진 두드림의 결과 연꽃잎을 닮은 유려한 곡선은 단순한 장식적 요소를 넘어 시간과 공간 속에 머무는 형태로 자리한다. 각 작품의 표면은 두드림과 손길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그 미세한 요철과 질감은 마치 은의 속삼임을 듣는듯하다.
사진= 비트리 갤러리 제공 은의 반짝임과 표면에 새겨진 흔적들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존재의 시간성을 상징하고, 빛은 한순간 머물렀다가 사라지지만, 그 여운은 공간에 잔존하게 된다. 이처럼 이상협의 작품은 순간과 영원을 넘나들며 ‘머무름’의 의미를 묻고있다. 이러한 ‘머무름’의 미학은 결과로서의 형태 이전에,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서 비롯된다. 이상협의 작업은 단순한 제작의 과정을 넘어, 장인 정신에 대한 그의 신념이 축적된 시간의 기록이다.

작가가 말하는 장인 정신이란 기술의 숙련을 넘어, 반복되는 노동 속에 자신의 땀과 노력을 섞어 영혼을 쏟아붓는 일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말하고, 은이라는 재료를 매개로 관객과 조용히 소통하는 작가가 되고자 한다. 말 대신 형태로, 설명 대신 흔적으로 남겨진 그의 작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이다. 작품의 형상은 바람과 물의 흐름에서 영감을 받으며, 멈추지 않고 순환하는 자연의 리듬은 은 위에 반복되는 두드림과 불질의 과정 속에서 서서히 응축된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벽돌같이 두꺼운 ‘은’은 쇠망치로 수없이 내려쳐지고, 불에 달궈지며, 각도를 올리고 다시 불질을 거친다.

표면을 고르고, 선을 새기고, 줄질과 연마, 사포질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긴 과정은 단순한 공정의 나열이 아니라, 재료와의 끊임없는 대화이자 인내의 시간이다. 두드림과 불질이 반복될수록 은은 단단해지고, 동시에 부드러워진다. 손의 힘과 불의 온도, 미세한 각도의 변화는 모두 작품의 표정이 되어 표면에 남는다. 매끄럽게 지워지지 않은 은의 결은 작가의 손이 머물렀던 시간의 증거이며, 그 축적된 흔적들은 노동의 무게와 집중의 깊이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처럼 이상협의 은공예는 빠르게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느린 호흡으로 빚어낸 시간의 결정체이다.

이 과정 속에서 탄생한 달 항아리와 연꽃잎 형상의 은 기물들은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노동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하며,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은은 더 이상 차가운 금속이 아닌, 숨을 고르고 머무는 존재가 된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서 이 느린 제작의 시간을 감각적으로 마주하며, 작가가 은에 새겨 넣은 침묵과 노력, 그리고 말 없는 대화를 경험하게 된다. 현대 사회는 빠른 속도와 즉각적인 소비를 요구하지만, 은빛이 품은 ‘느림’은 곧 존재의 깊이를 회복하는 행위이다. 관람객이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은 단지 시각적 체험이 아니라 내면과의 대화이며, 사유의 공간으로 나아가는 초대라 할 수 있다.

이 머무름 속에서 흔들리는 일상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존재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기를 기대한다.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연꽃잎의 형상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반복적으로 성형된 얇은 은의 주 름은 자연의 리듬과 수행적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기능과 장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조형 언어 는 은공예를 감상의 대상으로 확장시키며, 공예가 지닌 물성 중심의 사유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 낸다.

비트리 갤러리 서울점에서 선보이는 ‘은빛, 머무는 자리’는 그저 소비의 공간이 아닌, 잠시 머물며 은의 속삭임과 형태, 그리고 자신의 감각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이다. 은빛이 조용히 스며드는 이 공간에서, 이상협의 은공예는 관람자의 시간 속에 고요히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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