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부터 발생한 북한의 ‘한국발 무인기 침투’ 주장으로 이재명정부의 외교안보적 딜레마가 증폭되고 있다. 한국 정부로서는 무인기 운용 주체 규명이나 대응 측면에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곤란해질 수 있는 ‘회색지대’ 전술에 갇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를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세스 정착의 원년으로 삼기 위해 정부가 일관되게 취해 온 유화 정책이 오히려 북한의 강한 거부 반응을 일으켜 군사적 도발의 명분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12일 외교가에 따르면 이번 무인기발 변수는 남북 간 긴장 관리와 대화 국면을 조성하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에 복잡한 고민거리를 더했다. 이번 사태는 2024년 평양 무인기 침투 때와도 차이가 있다. 북한은 지난해 9월 무인기가 침투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외부에 즉각 알리지 않은 반면, 지난 4일에는 무인기 침투 사실을 비교적 빨리 공개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이번 공개 때 “지난해 9월 사건을 지난 4일 사건과 묶은 것은 사실적인 뒷받침을 더하기 위한 자료로서 한꺼번에 사용한 것 같다”며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무인기가 침투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공개적으로 군사 행동을 위협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평양 무인기 사건 당시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 직후 북한군 총참모부가 전선 포병연합부대와 중요화력임무가 부과된 부대들에 완전사격 준비태세를 갖추라고 작전예비지시를 내렸다. 반면 이번 무인기 침투에선 김 부부장의 대남 비난 담화가 있지만, 공개적으로 군사적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한국군과 정부 역시 지난 평양 사건 당시와 달리 신속하게 입장을 밝히고 조사에 들어갔다.
통일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김 부부장 담화에 대해 “일체 통신이 끊어진 상태에서 공중을 통한 소통을 하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라며 “우발적 충돌을 막고, 상대방 의도를 오독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통신선 복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무인기 포착했다는 강화 송해면 일대. 연합뉴스 표면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관리되는 모습이긴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 부부장의 비교적 절제된 담화가 실질적 군사 충돌이나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는 신호로 해석 가능하지만, 남북 대화 국면으로 보거나 이중적 의도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연구센터장은 “무인기를 민간 주체가 보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단순 개인인지, 북한과 연계된 주체인지 등은 확정하기 힘들다”며 “크게 보면 회색지대 전술의 틀 안에 우리가 가둬진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회색지대 전술은 행위 주체를 특정하기 어렵고 의도가 불명확한 저강도 도발을 통해 임계점을 넘지 않으면서도 상대에 대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두 센터장은 이번 사안이 북한의 회색지대 전술일 경우 그 의도에 대해 “9차 당대회를 앞두고 체제 결속을 위해 외부의 적을 지속적으로 상정할 필요성이 있고, 무인기 이슈는 내부 동원용 명분으로 활용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 없이 신속하게 투명한 해명을 내놓은 것은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스스로 제한하는 “저자세이자 소극적 대응으로 일각의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고 두 센터장은 덧붙였다.
무인기 운용 주체 조사 결과 북한의 개입이 드러난다면 남북 대화 자체에 대한 국내 여론 반발이 이어질 수 있고, 남남 갈등이 촉발될 여지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전통적으로 취해 온 이 같은 전략에 한국이 또 한번 말려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순수하게 민간에서 보낸 것이더라도 경계 공백이 발생한 사실을 공식화하게 된다. 두 센터장은 “정부 입장에서는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군 당국이 하지 않았다는 등의 입장을 밝혔지만, 북한의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메시지가 나온 감이 있다”고 분석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극동문제연구소)는 “역설적으로 우리 정부의 평화 메시지가 김정은 체제에 실질적인 압박이 되고 군사적 도발 여지를 주는 역효과를 고려해 보다 정교한 대북 정책과 메시지에 대한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현재로서는 정부가 시도하는 ‘바늘구멍만 한’ 소통 채널을 북한이 더욱 강하게 거부하며 당분간 강대강 대치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판단을 내놨다.
정지혜·박수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