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경와인셀라]몬탈치노 떼루아의 입맞춤…1년을 한 병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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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경와인셀라]몬탈치노 떼루아의 입맞춤…1년을 한 병에 담았다
편집자주하늘 아래 같은 와인은 없습니다. 매년 같은 땅에서 자란 포도를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고 숙성하더라도 매번 다른 결과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우연의 술'입니다. 단 한 번의 강렬한 기억만 남긴 채 말없이 사라지는 와인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아경와인셀라'는 저마다 다른 사정에 따라 빚어지고 익어가는 와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들려 드립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주 시에나(Siena)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몬탈치노(Montalcino)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남부 토스카나주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 중 하나로, 이탈리아 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러나 1980년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DM)가 'DOCG(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Garantita·보증된 원산지 통제 명칭)' 등급으로 인정되면서 지금은 토스카나를 넘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레드 와인 산지로 거듭났다.


중심에서 비켜난 언덕, 산 쥬세페

몬탈치노에서도 10km가량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관광객의 동선에서도 유명 생산자들의 지도에서도 한 발짝 비켜난 언덕에 '포데레 산 쥬세페(Podere San Giuseppe)'가 있다. 포데레 산 쥬세페는 오랜 시간 포도가 자라던 땅이었지만 2차 대전 등을 거치며 수십 년간 방치되고 있었다. 잠자던 이 땅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1992년 스텔라 비올라 디 캄팔토(Stella Viola di Campalto)였다.


스텔라 비올라는 본인이 산 쥬세페 포도밭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 특별한 포도밭으로부터 선택받았다고 여겼고, 이곳의 자연과 시간이 담긴 와인을 꿈꿨다.


포데레 산 쥬세페의 떼루아를 반영한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1995년 유기농 농법을 적용했고, 2005년에는 몬탈치노 지역에서 최초로 바이오다이나믹(Biodynamic) 인증까지 받았다.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은 화학 비료와 농약을 배제하고, 토양·식물·미생물·천체의 리듬을 하나의 생태계로 보고 농사를 짓는 방식이다. 스텔라 디 캄팔토는 8헥타르(ha) 남짓한 소규모 포도밭에서 연간 2만병이 채 되지 않는 와인을 생산하는데, 이 작은 규모는 결코 우연이 아닌 선택의 결과다.


흙을 통합하지 않는 태도…14개의 구획, 균질화를 거부하는 구조

산 쥬세페에는 '레치오(Leccio)', '쿠르바(Curva)', '사쏘(Sasso)', '바싸(Bassa)', '보스코(Bosco)', '울리보(Ulivo)', '톤디노(Tondino)', '케르치아(Quercia)', '에스트(Est)' 등 아홉 개의 주요 포도밭이 있다. 레치오는 점토암과 석회질, 쿠르바는 사암과 실트스톤의 혼합, 사쏘는 노출된 석회암이다. 같은 언덕 위에 놓였지만 흙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이곳의 토양은 산도(pH) 8.4~8.8로, 유기물은 적고 수분 보유력은 낮다. 일부 구획은 침식까지 겪는다.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농사에 불리한 조건인 셈이다. 그러나 스텔라는 이 불균질함을 문제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차이를 통합하지 않는 것이 이 와이너리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포도밭은 다시 14개의 세부 구획으로 나뉜다. 스텔라는 각 구획을 하나의 생명처럼 다루는데, 전정 시기와 수확 시점, 수확량 등이 모두 다르다. 모든 포도는 구획별로 따로 발효한다. 토착 효모만 사용해 자연 발효를 진행하고, 인위적인 스타터는 없다.


셀러에서 허락되는 개입은 산소뿐이다. 6시간마다 1시간씩 펌핑오버(Pumping Over·발효통 바닥에서 발효 중인 즙을 빼내 다시 위로 올리는 작업)를 반복한다. 밤과 주말도 멈추지 않는다. 발효가 끝난 와인은 중력에 따라 숙성고로 흘러 들어가며, 그곳에서 말로락틱 발효(Malolactic Fermentation)와 숙성이 이어진다. 스텔라는 매주 모든 배럴을 시음하는데, 그에게 이 반복은 노동이 아니라 구획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놓치지 않기 위한 훈련이다.


'마싸(Masse)', 조합이 아닌 해석

이 과정을 통과한 뒤에야 '마싸(Masse)'가 등장한다. 마싸는 구획 별 포도밭의 미세한 차이를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 2011년 도입한 독자적인 개념이다. 각 구획은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다. 어떤 해에는 단일 구획이 하나의 와인이 되고, 어떤 해에는 몇 개의 구획이 감각적으로 묶인다. 이 조합에는 공식이 없다. 오직 그 해의 기후, 셀러에서 느껴지는 흐름, 배럴 속 와인의 성격만이 기준이 된다. 그래서 한 빈티지에서 4~5가지 서로 다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가 태어난다. 스텔라 디 캄팔토에게 블렌딩은 평균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차이를 지우지 않기 위한 해석이다.


몬탈치노의 전통적인 브루넬로는 한 해를 하나의 병으로 설명한다. 이 방식은 이해하기 쉽지만 필연적으로 많은 것을 지운다. 레치오와 사쏘의 흙이 하나의 평균값으로 섞이고, 쿠르바의 질감은 구조 속으로 흡수된다. 스텔라는 이 요약이 떼루아를 훼손한다고 본다. 그래서 각 구획의 와인을 먼저 끝까지 듣고, 그다음에야 조합을 고민한다. 그녀에게 빈티지는 설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분해해야 할 구조다.

'스텔라 디 캄팔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아리아 2018(Stella di Campalto Brunello di Montalcino Aria 2018)'는 이 철학의 상징이다. 아리아는 스텔라 디 캄팔토의 2018년 빈티지 와인 3가지 중 하나로 단 4287병만 생산됐다. '아리아(Aria)'는 이탈리아어로 '공기(Air)'를 뜻하는데, 아리아가 생산되는 포도밭 세부 구획 내 독특한 공기의 순환에 의해 포도의 완숙 시기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 착안해 이름이 지어졌다.


아리아는 브루넬로(Brunello) 100%로 만들어졌다. 브루넬로는 이탈리아어로 암갈색을 의미하는 브루노(Bruno)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1879년 시에나의 포도 품종학 위원회는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몬탈치노의 브루넬로가 산지오베제(Sangiovese)와 동일한 품종임을 밝혀냈다.


브루넬로는 몬탈치노의 떼루아에 적합하게 개발된 산지오베제 클론이며, 현재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DOCG에서 유일하게 허가된 품종이다. DOCG 규정에 따라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최소 48개월 이상 숙성을 거쳐야 하며, 이 중 24개월은 오크통에서, 4개월은 병에서 숙성시켜야 한다. 법적 최저 알코올 도수는 12.5도(%)다.


와인은 포도밭의 토착 효모를 활용해 20~40헥토리터(HL)의 대형 오크통에서 발효가 진행된다. 발효를 마친 와인은 15~17HL의 배럴에서 34개월간 숙성되고, 이후 42개월간 병 숙성을 추가로 거친 후 출시된다. 아리아는 레드커런트의 신선하고 산뜻한 아로마와 함께 붓꽃의 진한 향기가 돋보이는 와인으로 검붉은 과실과 향신료, 으깨진 부싯돌의 향이 긴 여운을 남긴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촉감의 타닌과 복합적인 미네랄리티가 조화를 이루는 와인이다.


'스텔라 디 캄팔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바치아 2019(Stella di Campalto Brunello di Montalcino Bacia 2019)'는 2019년 빈티지 와인 3가지 중 하나로 8537병만 생산됐다. 이탈리아어로 '입맞춤(Kiss)'을 뜻하는 '바치아(Bacia)'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이 지어졌는데 이는 스텔라가 와인이 가지는 부드러운 질감과 산딸기의 아로마가 입맞춤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치아는 생동감 넘치면서도 강건함을 보여주는 와인으로 예술가의 열정과 충만한 에너지를 담고 있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촉감의 타닌이 입 안을 가득 메우며 강한 여운을 남기는 복합미가 돋보이는 와인으로, 발효와 숙성 구조는 아리아와 닮았지만 병 숙성은 29개월로 더 짧다.

대표작을 만들지 않는 생산자

스텔라 디 캄팔토에는 대표작이 없다. 대신 한 해를 여러 병으로 나눈다. 이는 시장 논리와도 거리가 있다. 기억하기 어렵고 설명하기도 번거롭다. 그럼에도 이 구조를 포기하지 않는데, 이 불편함이 땅에 대한 예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산 쥬세페에서는 늘 여러 개의 문장이 동시에 완성된다. 레치오의 흙이 쓴 문장, 사쏘의 돌이 남긴 어조, 쿠르바의 공기가 만든 여백. 스텔라 디 캄팔토는 이 문장들을 하나로 묶지 않는다. 대신 각기 다른 병에 나누어 담는다.


스텔라 디 캄팔토의 와인은 그래서 설명보다 오래 남는다. 어떤 해의 몬탈치노가 아니라 몬탈치노 안에 숨어 있던 여러 개의 얼굴을 다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스텔라 디 캄팔토가 브루넬로를 나누는 이유는 단순하다. 하나로는 결코 다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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