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종교는 성역이 아니다. 종교 역시 인간이 만든 제도이며, 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공적 주체다. 그렇기에 투명성과 책임의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지만, 이는 신앙의 내면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조직의 불투명한 운영이나 정치적 영향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특권은 아니다. 종교가 공적 영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 또한 공적 기준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질서다.
통일교와 신천지를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들 단체는 한국 사회는 물론 해외에서도 기독교의 이단, 혹은 이른바 ‘2단’으로 분류되며 교리의 폐쇄성, 조직 운영의 불투명성, 사회적 갈등 유발 문제로 오랜 비판을 받아왔다. 물론 모든 비판이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문제 제기를 단순한 편견이나 종교 탄압으로만 치부하는 태도 또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필요한 것은 감정적 비난이나 마녀사냥이 아니라, 냉정한 사실 규명과 법 앞의 평등이다.
이 지점에서 종교가 스스로에게 적용해야 할 기본 원칙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진리의 원칙이다. 진리는 감출수록 왜곡된다. 교리는 신비로울 수 있으나, 조직 운영과 재정, 대외 활동은 투명해야 한다.
둘째, 자유의 원칙이다. 신앙은 선택이어야 하며 강요나 위계적 통제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질문과 의심을 억압하는 종교는 이미 신앙의 본질을 잃은 것이다.
셋째, 정의의 원칙이다. 종교는 권력의 곁이 아니라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정치와 거래하는 순간, 종교는 스스로의 도덕적 권위를 내려놓게 된다.
이 원칙은 특정 종교만을 겨냥한 잣대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모든 종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교회든 사찰이든, 성당이든 사원이든 종교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분명하다. 스스로를 공개하고, 스스로를 점검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넓은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과 지식을 대체하는 AI 시대에 종교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기술은 효율을 제공하지만 삶의 의미와 존재의 목적까지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이 지점에서 종교는 다시금 인간성의 최후 보루로 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권위적 종교가 아니라 열린 영성의 종교일 때만 가능하다.
한국은 독특한 정신적 자산을 지닌 나라다.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로 상징되는 ‘홍익의 정신’은 인간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조화롭게 하려는 보편적 가치다. 이는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국 정신문화의 뿌리이며,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다. 여기에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仁), 도교의 자연관이 결합될 때 우리는 K-Spirituality, 한국형 영성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K-영성은 교세 확장이 아니라 인간의 성숙을 목표로 한다. 배타적 선교가 아니라 공감과 치유를 지향한다. 조직의 크기가 아니라 삶의 깊이를 중시한다. 이러한 영성 위에서 한국 종교는 서구의 기독교, 인도의 불교, 중동의 이슬람과 나란히 세계 종교 지형 속에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
종교는 성역이 아니다. 그러나 종교가 지켜야 할 영성의 가치는 여전히 신성하다. 투명과 책임 위에 다시 서는 종교, 진리·자유·정의를 실천하는 종교, 그리고 인간과 자연, 기술과 영성을 잇는 종교. 지금 한국 종교 앞에 놓인 과제이자 동시에 세계를 향한 새로운 가능성이다.
[그래픽=노트북LM] 아주경제=아브라함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