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백년지대계’로 불리지만, 우리나라 교육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려왔다. 2022년 9월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했다. 국교위는 ‘정권과 이념에 흔들리지 않는’ 교육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구로, 10년마다 교육현안에 대한 중장기 비전을 담은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한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대입 개편안도 국교위 손에 달린 셈이다. 하지만 윤석열정부의 1기 국교위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끝내 내놓지 못한 채 막을 내렸고,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해 ‘교육부의 거수기’란 비판도 받았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은 추락한 국교위의 신뢰 회복에 더해 이른 시일 안에 새로운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내놓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취임 후 100일 만에 빠르게 9개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국교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차 위원장을 8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이 8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향후 국교위 업무 계획과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대입제도 특위 위원장이기도 한 차 위원장은 새 대입 개편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지만, 고교 평가를 서·논술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을 표했다. 그는 “현재 초등 저학년이 치를 대입은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차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취임 넉 달이 지났다. 그간 국교위를 이끈 소회는.
“취임하고 보니 업무는 많은데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작았고, 신뢰 회복도 시급한 과제였다. 취임 때 100일 안에 혁신하겠다고 약속했고, 직원들과 합심해 노력했다. 우선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본회의 회의록을 전면 공개해 투명성을 높였다. 공직자의 업무는 이해관계자가 국민이기 때문에 비밀로 할 사안이 별로 없다. 또 교육 난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말까지 9개의 특위를 만들어 가동 중이다. 1기 국교위에선 활동 기간이 1년이었으나 6개월 안에 답을 내라고 독려하고 있다. 위원들 열의도 높고, 논의에 속도도 많이 붙고 있다. 이제 위원장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다(웃음).”
―새 대입제도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확정 후 나올까.
“2028∼2037년 적용 예정인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은 올해 시안을 발표하고, 내년 3월까지 확정할 예정이다. 10년 단위 중장기 계획인 만큼 대입제도의 구체적인 사항은 담기지 않지만 대입이 가야 할 방향은 담긴다. ”
―다음 대입 개편은 2032 혹은 2033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 대입제도는 어떤 모습인가.
“현재 특위에서 열심히 논의하고 있다. 현재는 구체적인 내용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위원장이 얘기하면 논의가 제약될 수 있어서다. 다만 원칙은 ‘공교육 중심’,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이다. 그간 정부는 ‘공정성’과 ‘신뢰성’을 중심으로 대입제도를 개편해왔으나 많은 국민은 고교 교육과정이 정상화되고, 사교육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학생이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학습하도록 공교육이 내실 있게 이뤄져야 한다. 대입제도는 고교 교육의 정상 운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
―지금 대입제도는 ‘공교육 중심’,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에서 미진하다고 보는가.
“그렇다. 한국 교육 제도에 대한 책임자 입장에서 현재 제도가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더 문제다. 항상 더 좋은 제도를 찾으려 노력해야 하지 않나. 다만 대입제도는 수험생과 학부모 입장에선 조금의 변화도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무리한 실험이 되지 않도록 개편에 따른 여러 현장 변화를 충분히 검토하고, 전문가들의 교차 검증, 시뮬레이션을 거쳐 학생·학교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
―지금 초등 저학년이 치를 대입은 지금과 다를까.
“당연히 이런 모습은 아니어야 한다. 이대론 안 된다는 국민 목소리를 듣고 있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변화의 방향이 맞는지는 돌다리를 두드려봐야 하기 때문에 너무 느리면 안 되겠지만, 신중하고도 확고하게 갈 것이다. ”
―현재 초등 저학년은 서·논술형 대입을 치른다고 봐도 되나.
“서·논술형 평가에 대해선 우리 대입제도 특위 위원 모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오지선다형 시험에 목숨 걸고 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 말고 찾기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해선 우리가 뒤떨어진 상태다. 이런 교육 차원의 후진성을 극복하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대입제도 특위 위원들은 우선 수능보다 내신평가에서 전면적 서·논술형 도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 검토할 생각을 갖고 있다. 고교 교육 정상화가 우선이고 대입은 그에 뒤따라와야 한다. ”
―내신 서·논술형 전면 도입은 언제쯤 가능하다고 보나.
“서·논술형을 전면 도입하면 교사 업무 부담이 증가하고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이 고도로 발달할 것이기 때문에 교사의 업무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기술 발달을 교육 혁신에 적극 사용해야 한다. 시기 단정은 어렵지만, 이미 서울 등 일선 교육청에서 AI 평가시스템을 발표한 만큼 운영과정을 지켜보고 시행 결과도 입수해서 보려고 한다. 국가 차원의 시범운영도 해야 한다. 빠른 변화를 원하는 국민 기대에는 못 미칠 수 있지만 탄탄하게 준비하겠다. ”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최근 ‘2033학년도 수능·내신 절대평가 전환, 2040학년도 수능 폐지’를 주장하면서 국교위에 이런 방안을 제출하겠다고 했다.
“아직 공식적으로 국교위에 제안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정 교육감의 제안을 포함해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듣겠다. 교육감들이 국가 정책 변화에 대해 제언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우리의 판단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교육청의 제안과 국가 정책 채택은 또 다른 차원이다. ”
―정 교육감은 ‘2028 대입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교육행정 책임자로서 답답함을 표현한 것 같은데 국가 제도는 만드는 것도 신중해야 하지만 변경은 더 신중히 해야 한다. 2028 대입 개편안이 적용된 학생들은 1학년을 보내고 벌써 고2에 올라간다. 지금 상황에서 바꾸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
―소위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이 성행하고 있다.
“우리는 그간 심각한 선행 사교육도 개인의 선택이라며 적극적 해결에 나서지 않고 방치했다. 영유아 단계의 과도한 선행학습은 아동 발달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유아 영어학원의 레벨테스트를 금지하는 학원법 개정안이 처리됐는데, 개정안에 면담방식의 진단행위는 허용하는 등 단서조항이 붙어 아쉽다. 예외를 허용하는 단서조항 빼고 통과되면 좋겠다. 레벨테스트는 확실히 금지해야 한다. ”
―사교육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난제 중의 난제다. 공교육, 특히 고교 생활에 충실한 것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보다 대입에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서·논술형으로 고교 평가 제도가 개선되면 대입을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책 많이 읽은 아이’가 입시에서도 유리할 수 있다. 유아 영어학원에 다닌 아이보다, 책을 많이 읽고 감동하는 경험을 많이 한 아이가 대학 입학에도 유리해지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편돼야 한다. ”
―얼마 전 입사 서류에 출신 대학 기재를 금지하는 ‘채용절차공정화법’ 통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역대 정부가 교육 경쟁 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대입제도만 바꾸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뿌리 깊은 학벌주의, 학벌 쟁취를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면 좋은 입시 제도도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 근본 문제인 학벌주의를 약화하고 무력화시켜야 한다. 입법에 도움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
―1기 국교위는 존재감이 작다는 비판이 많았다. 2기 국교위는 어떤 기관으로 만들고 싶나.
“국교위가 교육 난제를 해결하는 유능한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하겠다. 지난해 비정상적으로 작았던 사무처 기능을 강화해 조직을 정비했다. 새해에는 국교위가 당초의 설립 목적에 맞게 교육 정책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해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 ”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은…
●1961년 경남 창원 출생 ●부산대 법학과 학·석·박사 ●사법연수원 18기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점국립대학교 총장협의회 회장 ●제21대 부산대학교 총장 ●창원 YMCA 이사장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2025년 9월∼)
김유나·이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