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하 감독은 일반 관객에게는 낯설지만 독립 다큐멘터리계에서는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 존재이다. ‘울보 권투부’ ‘카운터스’ ‘모어’로 이어지는 전작들에서 두드러지는 감독의 강점은 강렬한 개성과 매력 넘치는 인물들을 발굴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들의 개성과 에너지에 주눅 들지 않고 캐릭터 못지않은 뚝심과 카리스마로 등장인물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때로는 불도저처럼 강력하고, 때로는 감각적인 스타일로 영화를 완성한다는 점이다. 그는 예리하게 논점을 잡아내고 묵직하게 테마를 던진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청년정치백서―쇼미더저스티스’ 역시 예외는 아니다. “불평등에 저항하는 진보 청년 ‘창인’, 불공정에 분노하는 보수 청년 ‘현진’”이라는 짧은 시놉시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진보와 보수 양극단에 있는 두 청년의 제도 정치권 도전기를 다룬다. 노동하는 부모 밑에서 남을 도우며 살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청년 김창인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대학을 자퇴하고 정치에 입문한다. 자수성가한 청년 사업가 현진은 정치권에서 추진되는 청년 정책이 포퓰리즘이라는 생각에 정치 입문을 결심한다. 두 사람의 꿈이자 화두인 ‘불평등’과 ‘불공정’ 자체는 상호 보완적 개념에 가깝지만, 계급별, 성별, 세대별로 갈래갈래 찢긴 우리 사회에서는 상대를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극좌와 극우 사이만큼이나 큰 간극을 함의하는 개념이 되었다.
만약 영화가 두 인물 중 한 사람을 취사선택하거나 한 사람에게 방점을 찍었다면 영화의 힘은 훨씬 미약하거나 한쪽 진영에서 자족적으로 소비되는 데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의 꿈과 도전은 의외로 이들이 차이 못지않게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들은 꿈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고 투쟁하지만, 그 꿈과 열정은 좌우를 불문하고 기성 제도권 정치세력이 만들어놓은 시스템 속에서 우롱당하고 좌절된다. 물론 이들은 젊다는 이유로 여전히 꿈꾸기를 멈추지 않지만, 그 꿈과 열정이 부서지고 도둑질당하는 과정을 보면서 마음이 편할 수 없다. 그것은 기성세대로서의 죄책감이다. 이 영화에는 의도적으로 회피한 구멍들이 눈에 띈다. 2시간이 안 되는 시간에 모두 담아내기에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라 말할 수도 하지만, 그런 실용적인 이유 외에도 영화에는 분명히 의도적으로 누락되거나 회피된 이야기들이 있다. 공정과 정의는 다르다. 그러나 문제 틀을 다른 각도에서 수정해 본다면 과연 공정과 정의가 그렇게 적대하는 언어가 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차라리 공정은 현실에서 유통되는 정의 개념에 난 상처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이 청년들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곧 기성세대의 실패이며 우리 사회 전체의 실패이다. 편가르기와 혐오의 언설을 뚫고 이들의 목소리에 좀 더 공적인 담론의 장을 내주어야 하는 이유이다. 혐오와 적대의 언어에 지친 사회에서 상대방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