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건축물은 건축가를 닮는다. 서울 종로와 청계천 사이에 우뚝 서 있는 ‘SK서린빌딩’이 그렇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검은색 외관, 오와 열을 맞춘 격자창, 자로 잰 듯한 접합부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이를 설계한 건축가 김종성이 떠오른다. 한 강연장에서 처음 마주한 그는 8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꼿꼿하고 정갈했다.
김종성이 건축을 배운 스승은 20세기 건축의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다. 미스는 ‘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Less is more)’라는 서양 모더니즘의 강령과 함께 장식을 걷어내고 검은 강철과 투명한 유리 입면으로 감싼 마천루 디자인을 창시했다. 구조미, 투명성을 강조해 산업사회의 미학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러한 건축양식을 그의 이름을 따 ‘미시안(Miesian) 스타일’이라 부른다.
청계천 방향으로 난 건물의 부출입구와 계단 중앙에 놓인 거북이 머리. 서울역사박물관, 남산 힐튼호텔, 경주 우양미술관 등 김종성이 설계한 건축물 중 SK서린빌딩은 고층 업무시설이라는 점 때문에 스승의 건축언어가 가장 충실하게 드러나 있다. 김종성 자신도 미시안 스타일의 원조격인 뉴욕의 시그램빌딩(1958, Seagram Building)이 SK서린빌딩의 원형이라고 인정했다. 동시에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발전한 커튼월 기술과 공조시스템을 적용했다. SK서린빌딩은 1999년에 지어진 ‘한국의 시그램빌딩’인 셈이다. 미시안 스타일의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불필요한 장식이 없는 매끈한 외관은 ‘격자 튜브 시스템’을 통해 구현됐다. 또한 이를 통해 건물에 수평으로 작용하는 힘(횡력)에 저항하며 경제성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견고함 속 가벼움이다. 사용자들과 주변 보행자들이 주로 마주하는 1층 입면은 투명한 유리로 처리해 모더니즘 건축이 추구한 투명하고 가벼운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외팔보(캔틸레버) 구조를 통해 종로와 청계천을 연결하는 1층 동서쪽 부분을 건물 외벽에서 3m 정도 뒤로 밀었다.
서울 도심에서 가장 높은 SK서린빌딩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매무새를 지닌 정장과 같은 세련되고 모던한 멋을 띠고 있다. 하지만 기단부에는 의뢰인의 염원을 담은 풍수지리적인 요소가 현대적으로 번안된 문양으로 새겨져 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종성은 업무시설의 제1덕목으로 ‘효율성’을 꼽았다. 그렇지만 SK서린빌딩만큼은 사대문 안에 세워진 높이 160m(36층)의 고층건물이기에 서울 도시 경관에 긍정적인 요인이 되어야지 추한 건물을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효율성과 심미성,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건축가의 치열한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은 건 이러한 건축적 성취보다 건물에 얽힌 풍수지리 이야기였다. 설계자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시도했다면, 의뢰인인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은 땅의 기운을 다스리는 지혜를 더하고자 했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건물이 지어질 땅의 모양과 형세(地勢)를 살핀 뒤 건물 곳곳에 거북이 형상을 배치하도록 했다. 풍수에서 ‘현무(玄武)’라 불리는 거북이는 북쪽을 관장하며 물을 상징하는 영물이다. 오행(五行)상 검은색(黑)이 물을 의미하기에, SK서린빌딩의 거북이 형상은 모두 검은색 돌로 만들어져 있다.
숨은 거북이 찾기는 청계천 방향으로 난 부출입구에서 시작된다. 계단 중앙에 놓인 검은색 둥근 돌이 바로 거북이의 머리다. 돌에는 맨 아래 가운데를 비워두고 8개의 점이 찍혀 있는데, 이는 주역 64쾌 중 13번째 괘인 ‘천화동인(天火同人)’을 뜻한다. ‘천화동인’은 하늘 아래 불이 타오르는 형상으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사람들과 화합하고 교류하는 것은 길(吉)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상행위나 그 밖의 영리행위를 목적으로 모인 집단’, 즉 ‘회사(會社)’의 지향점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문구다.
거북이의 꼬리는 반대편 종로 쪽 주출입구 바닥에 있다. 입구를 향해 뾰족하게 뻗은 삼각형 타일이 그것이다. 거북이의 네 발은 건물의 네 모서리 바닥에 깔린 물결무늬의 검은색 화강석이다. 특히, 앞발에 해당하는 부분은 건물의 기단을 덮고 있어 그 형상이 더욱 도드라진다.
검은색 화강암을 이용해 물결 문양으로 추상화된 거북이의 뒷발. 주목할 점은 거북이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구체적이지 않고 모두 추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례나 질서와 같은 개념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SK서린빌딩 속에서도 이질감 없이 녹아들어 있다. 풍수라는 고전적인 염원이 현대적인 조형언어로 세련되게 번안된 셈이다. 종합해 보면, 이 거대한 최첨단 빌딩은 추상화된 거북이 등 위에 올려져 있는 형국이다.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이 거북이의 형상을 선택한 이유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설은 ‘넘치는 화기(火氣)를 다스리기 위함’이다. 건물이 지어진 땅은 북악산과 관악산의 화기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한다. 풍수에서 적당한 화기를 지닌 땅은 기운이 솟구치기 때문에 재물이 마르지 않고 잔병치레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하면 화(禍)가 미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준공 당시 SK의 주력 산업이 에너지와 석유화학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검은색 외관의 빌딩을 원유 기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땅의 뜨거운 화기로 사업이 번창하되, 그 불길이 통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물의 신인 거북이로 눌러준다는 논리다. 물론 지금은 SK그룹의 전체 시가총액 중 절반 이상을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SK하이닉스가 차지하고 있다. 두 번째 설은 ‘영구음수형(靈龜飮水形)의 지기(地氣)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장수와 지혜를 상징하는 신령한 거북이(靈龜)가 물을 마시는 형상”을 뜻하는 ‘영구음수형’은 풍수지리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꼽는다. SK서린빌딩이 지어진 땅은 경복궁 동쪽으로 흐르는 지세가 청계천 물길을 만나 멈춰 선 곳이기 때문에 거북이가 알을 낳고 물로 돌아간다고 해석된다. 두 번째 설에서 검은색 건물은 그 자체로 거대한 거북이의 몸통이 되어 청계천의 물기운과 조응하며 ‘수기(水氣)’를 완성한다.
합리적인 이성과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모더니즘 건축가들에게 풍수는 자칫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비칠 수 있다. 장식은 배제하고 기능과 본질에 집중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기(氣)’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종성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풍수지리가 현대 건축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 건축의 필수 과정인 ‘입지 분석’을 풍수의 ‘터 잡기’로, 바람과 물을 다루는 ‘친환경 공학’을 ‘장풍득수(藏風得水)’로, 거주자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 ‘환경 심리학’을 부족한 기운을 채우는 ‘비보(裨補)’의 개념으로 치환해 이해한 것이다.
물론 건물에 거북이를 새겨 놓는다고 해서 기업이 부침을 겪지 않거나 경영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몇몇 호사가들은 정문이 후문보다 작다는 둥, 땅의 뒤를 받치는 산의 지세가 약하다는 둥 풍수적 결함을 논하며 이를 기업과 총수의 위기와 결부시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효험의 유무가 아니다. SK서린빌딩을 떠받치는 거북이는 회사의 번창과 구성원들의 무탈을 기원하는 회장의 바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역동적인 기운이 시작됐다. SK서린빌딩의 거북이 머리를 내려다보며,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 왔던 변화보다 더 큰 변화가 시작될 올해 서로의 평안을 빌고 감정의 안정을 줄 수 있는 내 마음속 거북이는 뭘지 생각해 본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