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 로봇 기술을 위한 ‘챗GPT 모멘트’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
불과 1년 전,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5’ 기조연설에 나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로봇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며 ‘임박했다’(just around the corner)는 표현을 썼다. 그간 연구실에 머물렀던 로봇 기술이 챗GPT처럼 대중화를 맞이할 순간이 머지않았다고 예고한 셈이다.
1년이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호텔에 마련된 ‘CES 특별 연설’ 무대에 선 그의 진단은 ‘현재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황 CEO는 연단에 올라 “피지컬 AI의 챗GPT 모멘트는 이미 도래했다(here)”며 “기계가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추론하며, 행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1시간30분 동안 자율주행, 슈퍼컴퓨팅, 로보틱스를 아우르는 거대한 청사진을 쏟아냈다.
차세대 AI칩 대전 CES 2026 개막을 하루 앞둔 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호텔에서 열린 엔비디아 CES 2026 라이브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 ‘베라’(오른쪽)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인근 베니션 호텔에서 리사 수 AMD CEO가 기조연설 도중 신형 GPU 인스팅트 ‘MI455X’를 선보이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연합 ◆생각하고 설명하는 운전기사 가장 많은 시선이 쏠린 발표는 자율주행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 ‘알파마요(Alpamayo)’ 공개였다. 황 CEO는 알파마요를 “생각하고 추론하는 자율주행 AI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알파마요는 인간처럼 상황을 판단한다. 예를 들어 복잡한 교차로에서 신호등이 고장 났거나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롱테일)이 발생했을 때, 단순히 멈추는 것을 넘어 △왜 멈췄는지 △어떤 경로가 가장 안전한지 등을 단계별로 추론하고 설명할 수 있다.
황 CEO는 연설에서 독일 완성차 브랜드 메르세데스 벤츠의 신형 CLA 모델에 알파마요가 적용된 ‘엔비디아 드라이브’ 솔루션이 탑재될 것을 예고했다. 그는 “엔비디아가 첫 자율주행 차량을 출시한다”며 “미국은 (올해) 1분기, 유럽은 2분기, 아시아는 3∼4분기로 예정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SK 메모리 들어간 ‘슈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가 진화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강력한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이에 황 CEO는 차세대 AI 슈퍼컴퓨팅 플랫폼 ‘베라 루빈(Vera Rubin)’을 공개했다. 베라 루빈 플랫폼은 중앙처리장치(CPU) ‘베라’,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을 포함한 6개의 칩이 하나로 합쳐진 시스템이다. 전작인 블랙웰 대비 AI 추론 성능이 5배, AI 학습 성능이 3.5배 좋아졌다.
베라 루빈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4)가 탑재돼 국내 업계의 관심이 큰 제품이다. 황 CEO는 이와 관련해 “이미 베라 루빈은 양산 단계에 돌입했다”며 “연말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등 고객사들에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에게 물리 상식을 가르치다 황 CEO는 피지컬 AI의 ‘정점’인 로봇 기술을 설명하며 소형 2족 보행 로봇 두 대를 무대 위로 불러내기도 했다. 엔비디아의 소형 컴퓨터 ‘젯슨(Jetson)’을 탑재했다는 이들 로봇은 황 CEO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기계음을 내며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 CEO는 이 로봇들이 인간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움직일 수 있는 비결로 엔비디아의 새로운 물리적 AI 파운데이션 모델인 ‘코스모스(Cosmos)’를 꼽았다. 코스모스는 로봇에게 중력, 마찰력, 관성 같은 물리 법칙을 가르친다. 엔비디아의 가상 세계인 ‘옴니버스’ 안에서 코스모스를 통해 로봇을 수만번 반복 훈련시키면, 로봇이 현실에 투입됐을 때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리사 수 “모든 사람에게 AI를”
같은 날 엔비디아의 ‘라이벌’ AMD의 리사 수 CEO는 라스베이거스 베니션 호텔에서 CES 2026 공식 기조연설(키노트)에 나섰다.
수 CEO가 이전 세대 대비 성능이 10배 높아진 신형 GPU ‘MI455X’, AI 개인용 컴퓨터 프로세서 ‘라이젠 AI 400’ 시리즈, 차세대 AI 데이터센터 랙 ‘헬리오스’ 등 신제품을 쏟아내자, 황 CEO에 대한 견제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특히 이날 키노트 주제인 ‘모든 곳에 AI를, 모든 사람에게 AI를’은 엔비디아의 AI 생태계 독점을 꼬집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라스베이거스=이동수 기자 d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