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간격으로 줄리 델피와 이선 호크를 촬영한 영화 ‘비포’ 시리즈(1996∼2013, 3부작)부터 12년에 걸쳐 소년 메이슨의 성장 과정을 담은 극영화 ‘보이후드’(2014)까지. 시간을 마술처럼 다루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신작 ‘누벨바그’(사진·지난달 31일 개봉)에서는 1959년 프랑스 파리로 관객을 안내한다. 영화는 29세 장뤼크 고다르(기욤 마르벡)가 훗날 ‘영화 언어를 새로 쓴 아이콘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60)를 만드는 과정을 흑백 화면에 담았다. 미국 감독 링클레이터의 첫 프랑스어 영화이기도 하다.
고다르가 첫 영화를 준비하던 이 시절은, 영화비평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를 중심으로 모인 젊은 프랑스 영화인들이 전 세대와 판이한 시각 언어를 제시하며 연이어 화제작을 만들어내던 시기였다. 새로운 물결, 누벨바그 한가운데서 고다르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동료들은 이미 데뷔했고, 자신보다 두 살 어린 프랑수아 트뤼포는 ‘400번의 구타’(1959)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영화 제작자가 그의 첫 장편영화 제작을 돕기로 하면서 ‘네 멋대로 해라’의 여정은 시작된다. 권투선수 출신 장폴 벨몽도(오브리 뒬랭)와 미국 배우 진 세버그(조이 도이치)를 주연으로 캐스팅한 고다르는 촬영과 편집 등 영화 제작 전 과정에서 기존 틀을 깨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다. 설득하고, 밀어붙이고, 윽박지르고, 증명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링클레이터는 “‘누벨바그’는 장뤼크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를 만드는 이야기를, 그가 그 작품을 만들던 스타일과 정신으로 찍은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1959년 파리 거리를 고스란히 복원한 듯한 배경과 자유로운 핸드헬드 기반 촬영, 흑백 화면은 ‘네 멋대로 해라’를 쌍둥이처럼 닮았다.
고다르와 진 세버그, 장폴 벨몽도 역을 맡은 세 배우 모두 실존 인물과 놀랄 만큼 닮았다. 트뤼포, 자크 리베트, 클로드 샤브롤, 아녜스 바르다, 에릭 로메르, 로베르 브레송, 알랭 레네,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 ‘누벨바그’에 등장하는 인물 상당수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실제 인물을 닮아, 보는 재미를 더한다.
프랑스 영화의 혁신이 시작된 이 황금기를 사랑하는 관객, ‘네 멋대로 해라’의 장면들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큰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게다가 좋은 소식도 있다. ‘네 멋대로 해라’가 이달 국내 최초 4K로 극장 개봉할 예정이다.
이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