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이기 전에 위대한 어른”…故 안성기가 남긴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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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이기 전에 위대한 어른”…故 안성기가 남긴 ‘품격’
안성기가 5일 오전 9시 별세했다. 사진 | 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故 안성기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국민 배우’로 불렸다. 다섯 살부터 아버지 친구의 권유에 따라 카메라 앞에 섰다. 여덟 살에는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으로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고, 일찌감치 주목 받았다. 생을 마감하기까지 배우의 삶을 걸어왔다. 그 마지막엔 거룩한 품격만이 남았다.

마치 운명처럼 영화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자라면 으레 거만해지기 마련이지만, ‘안성기’라는 이름 석 자 앞에서는 그 통념조차 무색했다. 반세기 넘게 최고의 위치를 지켰음에도 단 한 번의 스캔들조차 없었다. 세대를 불문하고 쏟아지는 것은 오직 미담뿐이다. 연기력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적인 면모에서도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진짜 어른’이었다.

‘국민 배우’라는 왕관은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2017년 4월 데뷔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인터뷰에서 “영화인들과 영화가 좀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성인 연기자로서의 삶을 출발하면서 저 자신을 굉장히 다그치고 많은 자제를 하면서 살았다”고 고백했다. 별도의 팬클럽을 두지 않았던 고인은, 대한민국 국민을 자신의 팬이라 여기며 그 이름에 걸맞은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았다.

안성기가 5일 오전 9시 별세했다. 사진 | 스포츠서울 DB
그 고귀한 노력은 후배들의 존경 어린 증언으로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 생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던 고인은 무명이었던 배우 이주영에게 “영화를 잘 봤다”며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격려했다.

촬영 현장은 그에게 또 다른 배려의 공간이었다. 스태프들이 추위에 떨까 직접 난로 옆에 자리를 마련해 온기를 나눴다.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탕웨이에게 다수의 취재진이 몰려 혼잡해지자, 직접 몸으로 막아서며 상황을 정리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예민한 순간, 이름값 높은 원로 배우가 직접 나서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지나치는 신인 배우의 인사를 가장 먼저, 가장 따뜻하게 받아준 이도 언제나 안성기였다.

시선은 늘 더 낮은 곳을 향했다. 1991년부터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다. 영화 ‘하얀 전쟁’(1992) 촬영 직후 베트남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펜을 들고 후원 요청 편지를 썼다. 촬영 스케줄보다 구호 활동을 우선순위에 두었다는 후문은 그의 진심을 대변한다. 병마와 싸우던 힘겨운 시기, 항암 치료로 잠시 호전되었을 때조차 환우들을 친구로 여기며 치료받던 서울성모병원에 1억 원을 기부했다.

안성기가 5일 오전 9시 별세했다. 사진 | 스포츠서울 DB
안성기의 삶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증명한 교과서다. 100여 편이 넘는 필모그래피 끝에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는 숭고한 유작으로 남게 됐다. 성웅 이순신의 얼이 수백 년이 지나도 우리 가슴에 살아 숨 쉬듯, ‘성숙한 어른’ 안성기가 남긴 삶의 향기 또한 우리 영화사에 길이 기억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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