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정치는 종종 정책의 이름을 바꿔 그 공(功)을 바꾼다. 이미 작동하던 정책에 새로운 간판을 달고, 그것을 '국가 전략'이라 부르는 순간, 그 출발점은 흐려지고 결과만 남는다. 최근의 '5극3특' 정책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 정책이 마치 현 정부의 창조적 발명처럼 유통되는 장면을 보며, 필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정부가 정말 새로 만든 정책인가, 아니면 이미 검증된 서울의 정책을 전국으로 확장한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5극3특의 핵심 개념, 즉 집중을 풀고, 기능을 분산하며, 지역의 자생력을 키운다는 발상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지 않았다. 이미 서울에서 수년, 길게는 십수 년 동안 실험되고 축적된 정책의 전국화다. 그 실험의 중심에는 오세훈의 도시 전략에 있다.
관광을 보자. 이 산업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들어서기 전만 해도 '부수 산업'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서울은 2006년부터 도시 경쟁력의 핵심으로 관광을 재 정의했다. 도시 공간을 콘텐츠로 만들고, 교통·문화·안전을 묶어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키웠다. 지금 '권역별 관광 거점'과 '연결형 관광'을 말하는 국가 전략의 상당 부분은, 서울이 먼저 설계하고 시행하며 성과를 보여준 모델의 확장 판이다.
환경정책은 더 노골적이다. 친환경 교통, 에너지 전환, 저탄소 도시라는 구호가 국가 정책의 전면에 등장하기 훨씬 전, 오세훈의 서울은 이미 이를 도시 운영의 표준으로 삼았다. 천연가스 버스 도입으로 대중교통의 배출을 낮췄고, 전기차·수소차를 도시 교통의 실전 무대에 올렸다. 이는 선언이 아니라 집행이었다. 중앙정부는 이 실험의 결과를 지켜본 뒤 제도화했다. 이 순서가 거꾸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재명 정부는 절대 망각해선 안된다.
그럼에도 지금의 정치 언어는 묘하게 왜곡돼 있다. 5극3특이 '국가 균형 발전의 새로운 해법'으로 포장되면서, 그 출발점이었던 서울의 경험은, 그 배경으로 밀려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정책이 이재명 정부의 창조물인 양 유통되는 장면은 정책의 연속성을 지운 정치적 왜곡에 가깝다. 정책은 단절이 아니라 축적 위에서 진화한다.
서울의 역할을 균형발전의 '장애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또 다른 왜곡을 낳는다. 서울은 단순한 소비 도시가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한민국의 전초기지다. 글로벌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서울은 도시 브랜드, 금융 인프라, 첨단 산업 생태계를 동시에 끌어올려 왔다. 선진 금융도시로의 도약, 스타트업과 첨단산업 육성, 국제도시 네트워크 확장까지, 이 모든 과정은 단기 성과가 아닌 장기 도시 전략의 결과물들이다.
반면 민주당과 전임 시장의 서울시정은 도시 성장보다는 표 계산에 기댄 분배와 포퓰리즘에 치우친 측면이 아주 많았다. 성장 없는 분배는 지속될 수 없고, 경쟁력 없는 도시는 나눌 것조차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5극3특 역시 지역의 자생력을 키우는 전략이 아니라, 6·3 지방 선거를 앞두고 지방 표심을 의식한 또 하나의 분배 프레임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국가 균형 발전은 성장의 부정이 아니라, 성장의 확장이어야 한다.
필자가 십수년간 지켜본 결과 서울은 중앙 정부의 것을 가져간 적이 없다. 먼저 만들고, 먼저 감당하고, 그 성과를 공유해 왔다. 실패의 비용도 서울이 모두 떠안았다. 성공만 골라 국가 정책으로 옮겨가면서 출처를 지우는 순간, 정책의 신뢰는 약해진다. 5극3특은 필요한 국가 전략이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가 아니라 서울 정책의 확장이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서울에서 검증된 정책의 전국화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국가 균형 발전은 비로소 지속 가능한 국가 전략이 된다.
아주경제=김두일 선임기자 dikim@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