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세계 음악 시장의 변방에서 주류로 도약한 K팝이 2026년 새해,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외연 확장을 앞세운 성장 공식은 한계에 이르렀다. 미국의 글로벌 음악 분석 기관 루미네이트 등이 K팝 성장세 둔화를 지적하며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가운데, 업계는 제작 시스템의 글로벌 이식을 통한 '질적 성장'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앨범 '1억장 시대' 저물어…'가치 소비'로 전환= 실물 앨범 시장은 9년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하며 1억장 시대의 막을 내렸다. 5일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써클차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실물 음반 판매량은 약 9890만장으로, 전년보다 17.7% 감소했다. 특히 걸그룹 판매량 감소폭(약 530만장)이 두드러졌다.
김진우 음악 데이터 저널리스트는 "지난해 앨범 판매량은 전년과 비슷하거나 다소 줄어든 9000만장 안팎이 될 것"이라며 "상위 10위권 경쟁 부재를 넘어 음원 시장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앨범 사재기나 초동(발매 첫 주 판매량) 경쟁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판매량은 줄었지만 수출액은 오히려 늘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반 수출액은 2억9180만달러(약 4210억원)로 전년(2억9023만달러)보다 증가했다. 팬들이 차트 순위를 위한 대량 구매에서 벗어나 LP나 한정판 굿즈 등 소장 가치가 높은 고가 상품에 지갑을 여는 가치 소비로 이동한 결과다.
이 같은 변화는 공연 등 '체험형 소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티켓 가격 인상에도 스트레이 키즈, 지드래곤, 블랙핑크 등의 월드투어는 잇따라 매진을 기록했다. 업계는 올해 공연 시장 규모가 역대 최대인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VIP 패키지와 사운드체크, 공연 MD 등 고부가 상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음악 시장은 단순 앨범 판매가 아니라 '슈퍼팬' 수익화가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이브, SM, JYP 등 주요 기획사가 위버스와 버블 등 플랫폼을 통해 팬들이 직접 2차 저작물을 생산·거래하는 '팬 투 팬(Fan to Fan)' 모델 도입을 서두르는 배경이다. '많이 파는' 시대에서 '비싸게, 오래 파는' 시대로의 전환이 본격화하고 있다.
◆BTS·블랙핑크·빅뱅…'3세대 레전드'의 귀환= 새해에는 글로벌 황금기를 이끈 3세대 간판스타들이 잇따라 복귀한다. 최대 화두는 방탄소년단(BTS)이다. 멤버 전원이 군 복무를 마친 이들은 오는 3월20일 신보 발매와 함께 대규모 월드투어에 나선다. 2022년 앤솔러지 앨범 '프루프(Proof)' 이후 4년 만의 완전체 활동이다. 황지원 iM증권 연구원은 "BTS 월드투어는 350만~4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랙핑크도 상반기 완전체 활동을 재개한다. 멤버 로제는 글로벌 히트곡 '아파트(APT.)'로 다음 달 열리는 그래미 어워즈 3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K팝 사상 첫 수상 기대를 키웠다. 정규 8집 '리버스(REVERXE)'로 돌아오는 엑소와 데뷔 20주년을 맞은 빅뱅의 복귀 역시 시장에 활력을 더할 전망이다.
◆글로벌 주류 된 'K 없는 K팝'…리스크 관리는 과제= "K팝은 이제 장르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의 이 명제는 올해 시장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하이브와 JYP 등은 미국, 일본, 라틴 아메리카 현지에서 인재를 선발·육성한 현지화 그룹 데뷔를 본격화하고 있다.
음반 수출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해외 법인 로열티와 지식재산권(IP) 수익 비중을 키우려는 전략이다. 영국 음악 매체 NME는 "한국 기획사들은 '음악 레이블'을 넘어 '탤런트 인큐베이팅 테크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2026년은 K팝 제작 노하우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리스크 관리는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산업 규모가 커질수록 아티스트의 도덕적 해이와 기획사의 위기 대응 능력은 주가에 즉각 반영되는 '투자 기준'이 됐다. 특히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저작권 분쟁, 딥페이크 성범죄 등 새로운 위험 요소에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얼마나 신속하고 윤리적으로 대응하느냐가 팬덤 이탈을 막는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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