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속도만 앞선 행정통합, 조급함부터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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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뷰] 속도만 앞선 행정통합, 조급함부터 버려야
지난 2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강기정 광주시장·김영록 전남지사가 광주·전남 행정통합 선언문을 발표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지난 2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강기정 광주시장·김영록 전남지사가 광주·전남 행정통합 선언문을 발표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대전·충남, 광주·전남 등 행정통합 논의가 정치권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앞에 두고, 행정 단위를 키워 돌파구를 찾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통합은 위기의식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행정통합은 권한과 재정, 공공서비스 체계 전반을 재편하는 중대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논의는 통합이 지역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보다 ‘지금 아니면 못한다’는 조급함이 앞서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공식석상이나 회의장에서는 매번 ‘대전·충남’ ‘광주·전남’이 묶여서 적힌다. 지도를 펴면 가까운 이웃이고, 생활권을 따져도 이미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통합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인구가 줄고 재정이 마르는 시대에 행정 경계를 키워 규모를 확보하자는 제안은 매우 직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논의의 온도는 분명 이전보다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행정통합이 지역의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되려면 ‘함께 묶자’는 구호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청사진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
 
행정통합은 단순히 간판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광역시와 도를 합치는 순간 권한의 층위가 재편되고 예산의 흐름이 바뀌며, 행정서비스의 접근성이 달라진다. 통합론이 강조하는 효율성은 실무 단계에서 쉽게 ‘중심지 강화’로 변질될 수 있다. 통합 이후 조직이 한곳으로 모이면 당장 편해지는 쪽은 대체로 중심 도시다. 반대로 군 단위·중소도시 주민에게 통합의 체감은 확 떨어질 수밖에 없다. 행정의 규모가 커질수록 민원 한 건, 복지 한 항목의 사각지대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과소평가하면 통합은 격차를 줄이기보다 내부 격차를 키우는 장치가 된다.
 
통합이 격차 해소가 아니라 내부 불균형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위험을 통제할 장치 없이 통합을 서두르는 것은 책임 있는 정책 태도라 보기 어렵다.
 
정치 일정에 휩쓸리는 위험도 존재한다. 통합은 장기 과제인데, 논의는 오는 6월 지방선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엇보다 통합의 핵심 쟁점인 권한 배분, 청사·기관의 분산 배치, 재정 조정 장치, 공공서비스 표준화 같은 문제는 기술적·법적 난도가 매우 높다. 시간을 줄이면 설계가 얇아지고, 설계가 얇아지면 통합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통합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순서를 바꿔야 한다. 통합 ‘선언’이 앞서는 대신 통합 ‘조건’이 앞서야 한다. 주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통합 이후의 행정 서비스 변화, 재정 영향, 지역별 투자계획을 수치와 지도 수준으로 공개하고, 찬반을 묻기 전에 선택지를 놓고 숙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공론화위원회나 시민참여단 같은 장치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제도적 절차로 진행해야 통합의 정당성이 생긴다.
 
또한 전면 통합이 아니라 기능 통합부터 시작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교통망, 산업단지 연계, 환경·재난 대응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과제를 공동으로 운영해 성과를 축적하면 통합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명분이 쌓인다. 동시에 통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주변 지역의 소외를 막기 위한 장치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 예산 배분의 최소 보장, 공공기관의 분산 배치, 생활권 단위의 행정센터 유지 같은 안전장치가 없으면 통합의 이익은 특정 지역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행정통합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이 정교한 설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통합을 말하는 정치가 진짜로 지역을 살리고 싶다면 결단의 속도를 강조하기보다 통합의 진정성을 증명해야 한다. 주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통합은 지역의 미래를 열지 못한다.
아주경제=김봉철 기자 nicebong@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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