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래의 ‘성행위’까지 알 권리인가? [함상범의 옥석]

글자 크기
박나래의 ‘성행위’까지 알 권리인가? [함상범의 옥석]
박나래. 사진 | 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도를 넘었다는 말조차 부족하다. 진흙탕 싸움을 넘어 인격 살인에 가까운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박나래를 둘러싼 전 매니저들의 폭로전이 점입가경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불법 의료 행위’ 의혹까지는 공적 영역에서의 비판과 검증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채널A가 보도한 ‘차량 내 성행위’ 의혹은 차원이 다르다. 여성 연예인의 지극히 내밀한 사생활, 지독한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는 ‘성행위’ 묘사까지, 과연 대중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을까.

◇ ‘갑질’ 고발인가, ‘수치심’ 전시인가
지난 2일 채널A는 박나래 전 매니저들이 노동청에 제출한 진정서를 확보하고 그 내용을 보도했다. 매니저들은 “운전 중 뒷좌석에서 남성과 특정 행위를 해 괴로웠다”며 이를 ‘직장 내 괴롭힘’의 근거로 들었다. 좁은 차 안에서 타인의 성적 행위를 강제로 인지해야 했던 매니저들의 고충은 노동 인권 차원에서 다뤄질 문제다.

하지만 이를 보도하는 채널A의 방식은 ‘갑질 고발’보다 ‘선정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뒷좌석에서 O행위” “시트를 발로 찼다” 등 적나라한 묘사를 앞세웠다. 공익을 목적으로 한 보도라기보다,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한 ‘관음증 상품화’에 가깝다. 특히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수치심을 만천하에 전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언론의 역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사형 선고…‘인민재판’의 광기
박나래는 이미 ‘주사 이모’ 논란 등으로 대중의 심판대에 올랐고, 자숙의 시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 매니저들과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으면서 폭로는 사적 영역으로 겉잡을 수 없이 번졌다.

문제는 확인되지 않은 일방의 주장이 마치 사실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통사고의 위험성은 검증이 필요한 대목인데, 이미 보도되면서 박나래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타락한 연예인’으로 낙인찍혔다. 법적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사회적 사형 선고’가 내려진 셈이다.

어떠한 범법자라도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방어권을 갖는 것에 반해, 박나래는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방어권조차 박탈당한 채 발가벗겨졌다.

◇알 권리와 인권 사이 ‘이젠 멈춰야 할 때’
언론은 수많은 연예인을 사지로 내몰았다. 故 이선균과 故 김새론을 비롯해 수많은 연예인이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와 여론의 난도질 속에 스스로 목숨을 내던졌다. 박나래 역시 그 위험한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가 연예인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소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매니저들의 피해 호소가 거짓이라 단정할 수는 없고, 만약 사실이라면 박나래는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비판의 방식이 ‘인민 재판’의 형태여서는 안 된다. 잘잘못은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가리면 된다. 지금처럼 대중이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알아가며 조리돌림 하는 것은 ‘정의 구현’이 아니라 ‘집단적 관음’이자 ‘폭력’이다.

지나친 폭로에 옹호론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잘못의 유무를 떠나, 폭로의 방식과 수위가 인간으로서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의미의 ‘반작용’이다. “너무 잔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승자 없는 싸움이다. 박나래는 회복 불가능한 이미지 타격을 입었고, 전 매니저들 또한 ‘폭로를 위한 폭로’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중계하는 언론과 소비하는 대중 역시 ‘인권 침해’의 공범일 수 있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법의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무차별적인 폭력을 거두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이것이 최소한의 성숙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