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현대 미국의 탄생』 핼버스탬 “초강대국과 제국의 양가적인 현대 미국의 기원은 1950년대였다” [김용출의 한권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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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현대 미국의 탄생』 핼버스탬 “초강대국과 제국의 양가적인 현대 미국의 기원은 1950년대였다” [김용출의 한권의책]
한편으로는 세계인들이 이상향으로 여기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초강대국의 모습, 다른 한편으론 냉전 속에서 자국에 유리하면 독재 정권이라도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제국주의의 모습. 그러니까 자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신고립주의의 터널로 내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전의 미국 이미지는 늘 양가적이었다. 마치 야뉴스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 같은 현대 미국의 모습은 언제 어떻게 기원한 것일까.

“돌이켜보면, 1950년대는 사회적 갈등이 거의 없었던 질서정연한 시대였다. 당시의 사진들 속에서 사람들은 매우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남성들은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야외에서는 모자를 썼으며, 여성들은 페이지 보이 스타일로 머리를 단정하게 손질한 발랄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중략) 그럼에도 그 시대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시기였다.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한 반체제 운동을 가능하게 할 혁신적인 신기술이 개발되고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적이 알게 모르게 지나치게 물질적인 것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9쪽)

케네디정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베트남전쟁 실패의 근원을 파헤친 논픽션 『최고의 인재들』로 퓰리처상을 거머쥔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새로 번역 출간된 책 『1950년대 현대 미국의 탄생』(안철흥 옮김, 페이퍼로드)에서 바로 이 양가적인 현대 미국을 만든 기원으로서 1950년대를 탐사한다. 이를 통해 조지 워싱턴과 토마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이 만들었던 미합중국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제국’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생생하게 증명한다.

책에 따르면, 20세기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지구적 위상을 자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질서는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 책임과 막대한 비용을 선뜻 떠안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갈등과 시행착오, 실험이 뒤엉키면서 서서히 세계질서를 이끄는 리더로 변모해 갔던 것이다.

예를 들면, “저주받을 전쟁을 치르기 위한 최악의 장소를 고르라고 하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만장일치로 한반도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한 딘 애치슨처럼,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을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한국의 가치를 깨닫기도 했다.

“남한의 가치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한밤중에 기습을 감행하고 나서야 인정받았다. 그것은 전략적이라기보다 심리적인, 즉 적이 국경을 넘어왔다는 데서 비롯된 가치였다. ”(105쪽)

해리 트루먼 1950년대,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이 본격화하면서 핵개발 경쟁이 가속화했다. 한반도에선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1953년 이란작전을 시작으로 냉전 시대의 비밀공작 모델이 된 과테말라 쿠데타에 CIA를 통해 개입하기도 했다.

“아이젠하워는 처음부터 CIA가 후원하는 과테말라 쿠데타에 동의했다. 그는 점점 더 공산주의를 하나의 거대한 세력으로 봤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비합법적인 수단이라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젠하워의 이러한 강경한 면모믄 대중에게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그는 온화하고 공정하며 침착한 성품으로, 결코 냉전의 열성적인 지지자나 극단적인 애국주의자로 보이지 않았다. ”(574쪽)

포스터 델레스를 비롯해 많은 미국 정부 정책 입안자들은 매카시즘 파동 등 미 국내 정치가 만들어낸 편견에 사로잡혀 호치민을 필두로 민족주의자가 대세를 장악한 인도차이나 정책에서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다.

더글러스 맥아더 “미 행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은 국내 정치가 만들어낸 편견에 사로잡혀 베트남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 포스터 델레스가 반복해야 했던 말은 베트남이 중국과의 더 큰 투쟁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미국은 농민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어떻게 강력한 서방 국가의 군대를 패퇴시켰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상대방이 왜 승리했는지 이유를 설명하려는 사람은 그가 누구라도 공산주의에 유화적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626쪽)

1950년대 미국의 변모는 단순히 외교안보 정책이나 정치에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전환은 사회 전반에 걸쳐 동시 다발적이었다. 제대 군인들이 돌아오자 교외에 새 타운이 들어섰고, 조립식 공정을 통한 자동차 대량 생산이 이뤄지면서 자가용 시대가 활짝 열렸다.

특히 텔레비전의 보급은 미국의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정치까지도 완전히 바꿔버렸다. 라디오 시대 루스벨트식의 노변 정담이 사라지고, 대신 존 F. 케네디 같은 이미지 연출에 능한 정치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리처드 닉슨 또 피임약이 개발돼 섹스혁명의 단초가 마련됐고, 세탁기와 냉장고 등 백색 가전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여성들은 가사에서 해방되고 사회적 진출을 본격화했다. 맥도널드 햄버거가 등장해 미국인의 입맛을 패스트푸드로 바꿔 버렸고, ‘홀리데이인’이 등장해 표준화된 서비스의 호텔 체인이 등장했다.

물론 이 같은 번영의 이면에는 인종차별이나 여성차별, 성 억압 등의 모순과 문제도 숨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운동 및 흑인 민권운동의 싹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1955년 12월,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버스 안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않겠다고 하면서 체포된 뒤 흑인 사회는 대규모 버스 승차거부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청중을 장악하는 압도적인 대중 연설로 민권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킹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자.

“‘우리가 틀렸다면, 미합중국 헌법이 틀린 것입니다. 우리가 틀렸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틀린 것입니다. 우리가 틀렸다면, 나사렛 예수는 그저 유토피아적 몽상가일 뿐, 결코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틀렸다면, 정의란 거짓말일 뿐입니다. ’ 이 즈음부터 군중들은 그의 말 한 마디 한마디에 환호하며 그와 하나가 되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정의가 물처럼 흐르고, 의로움이 강물처럼 넘실대는 그날까지 몽고메리에서 일하고 싸울 것을 결심합니다. ’”(843쪽)

로버트 오펜하이머 저자는 11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 속에서 한국전쟁부터 맥도널드의 탄생, 엘비스 프레슬리의 등장부터 CIA의 비밀공작까지 1950년대를 구성한 무수한 사건과 사고, 흐름의 조각들을 생생하게 복원하는 데 성공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트루먼, 맥아더, 매카시, 리처드 닉슨, 오펜하이머, ‘수소 폭탄의 아버지’ 에드워드 텔러 등 애증의 관계에 있는 정치, 군사, 과학의 대표자들이 마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저자는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빛과 어둠, 주요 인물들의 모습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드러냄으로써, 1950년대 미국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세계 정치와 사회의 균열, 냉전의 유산, 과학기술과 자본이 만들어내는 삶의 변화가 바로 1950년대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중공군의 참전을 비롯해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를 놀라운 필치로 그려낸 『콜디스트 윈터』를 출간하기도 했던 저자가 이번 신간을 펴낸 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인 1993년, 그의 나이 59세 때였다. 저자는 책 후기에서 “나는 1950년대에 자라난 사람이다. 1951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55년에 대학을 졸업했으며, 내 가치관은 그 시대에 형성됐다”며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복잡한 10년이었던 1950년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탐구할 뿐 아니라, 왜 1960년대가 도래하게 되었는지까지도 보여주는 책을 쓰고 싶었다”(1146쪽)고 말했다. 저자는 2007년 캘리포니아 멘로 파크에서 교통사고로 73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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