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참부모의 현현, 6천 년 기다림의 완성 [역사와 신학에서 본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 ?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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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참부모의 현현, 6천 년 기다림의 완성 [역사와 신학에서 본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 ? 기고]
1960년 음력 3월 16일 아침 10시, 서울 청파동의 작은 교회. 전국에서 선발된 700여 명의 신도가 청파동 본부교회 안팎을 가득 메웠다. 화려한 장식도, 주례도 없었다. 다만 통일교의 창시자 문선명 목사와 17세 한학자가 하나님 앞에서 성혼식을 치렀다. 그날의 예식은 훗날 인류 구원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으로 기억된다.

서구 기독교가 2천 년 동안 길러온 신부 영성과 한민족이 오랜 세월 간직해온 고유한 하늘 신앙이 한반도에서 만난 순간이었다. 서구 교회가 순교와 신비, 체험과 은사, 깨달음과 성화 등 성령 역사를 통해 신부로서의 준비를 이어왔다면, 한민족은 하늘을 인격적으로 모시며 공동체와 역사 속에서 영적 그릇을 빚어왔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목적은 하나였다. 두 흐름이 이 땅에서 하나로 합쳐지며, 오랫동안 예비되어 온 이야기의 다음 장이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재림주 문선명 목사와 독생녀 한학자의 성혼식’은 통일교에서 어린 양 혼인잔치의 의미를 지닌 행사로 여겨진다. 이 성혼식은 하늘부모님과 하나 된 참부모가 출현한 사건으로, 하늘부모를 잃고 방황하던 인류가 마침내 실체적인 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를 맞이하게 된 역사적 순간으로 기념된다. 이 성혼식은 신앙의 언어로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라 불렸고, 역사 속에서는 한 시대가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경계선처럼 자리 잡게 된다. 누구도 크게 외치지 않았고, 세상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날의 성혼은 이후 수많은 삶과 가정, 그리고 신앙의 방향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때로 역사는 이렇게, 가장 조용한 순간에 가장 큰 변화를 시작한다.

◆재림주의 소명, 그리고 ‘교회 중의 교회’

1935년 부활절 새벽. 평안북도 정주 묘두산에서 기도하던 16살 소년 문선명은 생애를 바꾸는 체험을 한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심장이 터질 듯한 감격 속에서 슬픔에 잠긴 예수님의 얼굴과 그 음성을 똑똑히 들었다.

“고통받는 인류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 슬퍼하고 계시니라. 하늘의 천명을 받아라!”

그날 이후 그는 기도와 고행, 그리고 치열한 영적 탐구 속에서 통일원리를 정립해 나갔다. 김성도, 허호빈 등 한국 여성 신령집단을 통해 흘러온 계시들은 흩어진 신비 체험이 아니라, 하나의 일관된 신학 체계로 엮였다. 그 핵심에는 기존 기독교 이해와 다른 관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를 향한 사랑의 희생이었지만, 본래의 뜻은 아니었다는 깨달음. 재림주가 하늘 신부를 맞아 참부모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이상이라는 인식이었다.

1954년 5월 1일, 서울 북학동.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가 문을 열었다. 오순절 성령강림에서 시작된 2천 년의 신부 찾기 여정이 결실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초대교회의 동정 순교자들, 중세 신비가들의 신부 영성, 종교개혁 이후 경건주의와 대각성 운동 그리고 한국 평양 대부흥과 신령집단의 새로운 계시와 메시아 대망 신앙까지. 그 모든 흐름이 이 땅에서 하나로 수렴되며 ‘교회 중의 교회’, ‘신령과 진리의 교회’가 세워졌다. 이제 남은 과제는 단 하나였다. ‘신부 중의 신부’를 맞이하는 일이었다.

“한학자가 대한민국에 났다”

한학자는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 조원모의 손에 이끌려 자랐다. “내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 그녀에게 하늘부모님은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일상의 중심에 계신 분이었다. 학창시절, 성서를 읽으며 하늘부모님이 수천 년 동안 자녀를 찾아 헤매며 겪어야 했던 한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밤마다 흐느끼며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것은 일시적인 종교적 감정이 아니었다. 독생녀만이 감당할 수 있는, 하늘부모님과의 직접적이고 본질적인 교감이었다.

1955년, 12살의 한학자는 어머니 홍순애를 따라 청파동 본부교회를 찾았다. 문선명 목사는 소녀를 바라보며 세 번이나 되뇌었다.

“한학자가 대한민국에 났다. 한학자가 대한민국에 났다. 한학자가 대한민국에 났다. ”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한학자 앞으로 희생해야지.” 12살의 예수님이 성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던 것처럼, 독생녀 또한 그 나이에 사명을 인식했다. 이후 그녀는 하늘부모님을 위한 희생이 곧 인류를 위한 봉사라는 마음으로 살아갔다. 전쟁고아와 굶주린 이웃, 병든 사람들의 모습이 늘 눈에 밟혔다. 간호사의 길을 준비하면서도, 내면에서는 하늘신부로서의 준비를 멈추지 않았다.

1959년 가을, 한학자는 깊은 영적 체험 속에서 하늘부모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니, 창세 전부터 우주의 어머니를 기다려왔다. ” 그는 어린 양 혼인 잔치의 신부로 인침 받았음을 깨달았다.

◆두 해석의 완성, 참부모의 현현

1960년 이른 봄. 가약식을 앞둔 한학자는 무아의 경지에서 기도했다.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 당대에서 복귀섭리를 끝내겠습니다. ”

그 결의 속에는 6천 년 동안 잃어버린 자녀를 찾아 헤매야 했던 하늘부모님의 한이 담겨 있었다. 타락으로 무너진 참가정과 참사랑, 참생명, 참혈통을 되찾겠다는 독생녀의 결단이었다.

1960년 음력 3월 16일. 성혼식이 거행되었다. 성서에 나타난 ‘신부’에 대한 두 가지 해석, 즉 ‘교회론적 신부’와 ‘신비주의적 실체 신부’가 동시에 성취되는 순간이었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계 19:7)

독생녀는 2천 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입었다. 순교자들의 절대 신앙, 신비가들의 순결한 신부 영성, 종교개혁자들의 구도 정신, 한국 신령집단의 간절한 메시아 대망 신앙이 한 벌의 세마포가 되었다. 재림 메시아 문선명과 독생녀 한학자가 참부모로 현현한 순간, 하늘부모님의 창조 이상은 비로소 지상에서 숨을 쉬기 시작했다.

1943년 독생녀의 탄생에서 1960년 성혼에 이르기까지의 17년. 그 시간은 한 개인의 성장사가 아니라, 하늘과 땅이 다시 연결되는 준비의 역사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쳤지만, 그 완성은 영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1960년, 마침내 그 한이 풀렸다. 재림주와 독생녀의 성혼으로 참부모가 현현했고, 무형의 하늘부모님은 실체 참부모와 하나가 되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양순석 역사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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