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2022년 지방선거 당시 1억원 공천헌금 의혹의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둘러싼 각종 논란 돌출 속에 벌어진 이 의혹의 여파로 김 전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등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사정당국은 수사에 돌입했다. 경찰은 김 전 원내대표와 관련한 고발 사건들을 통합 수사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사건의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칫 이재명 대통령까지 연관될 수 있는 대형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야당은 즉각 특검 도입을 주장하면서 대여 공세에 나섰다.
지난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가 감사원장(김호철) 임명동의안 등 안건에 대해 투표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공천헌금 의혹’ 수사 착수 서울경찰청은 31일 언론 공지를 통해 김 전 원내대표와 관련한 고발 사건 11건 중 10건을 광역수사단 공공범죄수사대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의원의 지역 보좌관이 김경 서울시의원으로부터 1억원을 전달받고 이를 강 의원과 김 전 원내대표와 상의했다는 사건도 함께 배당됐다.
해당 의혹은 ‘김 전 원내대표가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강 의원 측이 시의원 공천을 신청한 김 시의원으로부터 현금 1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돈을 돌려주라고만 하고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지난 29일 언론보도를 통해 관련 녹취 등이 공개됐고 김 전 원내대표는 이튿날 직에서 물러났다.
서울청은 김 전 원내대표의 대한항공 호텔 숙박권 무상사용 의혹에 대한 고발 사건,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하며 알게 된 사실을 김 전 원내대표 보좌진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는 김 전 원내대표 장남에 대한 고발 사건도 이날 영등포경찰서와 서초경찰서에서 각각 이첩받았다. 동작경찰서가 지난 9월부터 진행 중인 차남 숭실대 및 취업 청탁 수사는 진행 정도를 고려해 이첩받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오후 김 전 원내대표의 ‘쿠팡 식사’ 의혹 등을 고발한 시민단체 대표를 소환하며 실질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국정감사를 앞둔 지난 9월 박대준 당시 쿠팡 대표 등과 만나 쿠팡에 취업한 자신의 전 보좌관의 인사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혹이다. 경찰은 이 단체가 고발한 대한항공 숙박권 의혹도 함께 조사했다.
◆與 “멘붕”…野 “즉각 수사” 민주당은 1억원 공천헌금 의혹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사자들이 의혹을 부인하고 있으나 자칫 여권발 도덕성 논란으로도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청래 당 대표의 즉각적인 감찰 지시와 여권 내 비판 확산에도 파장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시 지방선거에서 당을 이끈 사람이 현 이 대통령(당시 총괄선대본부장)이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31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해당 의혹에 대한 녹취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모든 선거의 승패는 공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천 관리를 아주 엄격하고 제도적으로 만들어 온 민주당에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게 상상할 수가 없고 너무 충격적”이라며 “의원들 모두 멘붕(멘탈 붕괴)에 빠지는 정도의 문제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도 사실 반신반의한다”고도 했다. 그는 “당 대표가 이 문제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당 전체 시스템이 의심을 받게 되고, 민주당이라는 당명 자체도 의심을 받게 된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거듭 강조했다.
친명(친이재명)계 핵심인사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도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시의원이 돈을 주고 공천을 받으려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민주당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라며 “이런 행위들이 사라진 건 한 20년 전인 듯한데, 구태의 악습들이 부활한 것 같아 대단히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는 강 의원에 대해 “공천 대가의 형태로 (금품을) 인식했든 인식하지 않았든 돈을 수수했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강 의원과 김 시의원 모두 공천을 대가로 돈을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사무처 당직자 종무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은 강 의원 등의 공천헌금 수수 의혹에 대해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가 미진할 경우 특검을 통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민주당을 압박했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종무식에서 “김 시의원에 대한 단수 공천장은 1억원에 대한 현금영수증”이라며 “특검은 우리 당 공천과 관련해 탈탈 털었다. 똑같은 잣대를 가지고 강력하고 신속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공천 청탁 의혹이 세상에 드러난 이상 철저한 수사와 진상 조사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며 “민주당의 공천 뇌물 사태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며,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면 특검을 통한 진상 규명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도형·박세준·이예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