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불평등 심화할수록 아이 안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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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불평등 심화할수록 아이 안 낳는다?
“경제적 격차가 만든 경쟁 압력, 저출산 핵심 기제”
소득 불평등을 보여주는 지표인 지니계수가 0.1 증가하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평균 약 0.15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될수록 자녀의 성공에 대한 압박감과 함께 실패의 공포가 커지고, 이 과정에서 사교육비 등 경제적 불확실성이 심화해 결국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면 합계출산율이 높아지는 ‘출산의 선택성’ 역시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30일 이런 내용이 담긴 ‘소득·자산 불평등이 인구구조에 미치는 영향 분석 및 인구 시뮬레이션’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는 김 의원 의뢰로 국내 인구 경제학 분야의 권위자인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가 수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니계수가 0.1 증가할 때 합계출산율은 평균 0.15 감소했다. 지니계수는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수로,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는 의미다.

이철희 교수는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경제적 격차가 만들어낸 경쟁 압력을 지목했다. 즉, 한 사회의 일자리 질과 임금의 격차가 커질수록 노동시장에서 상위권에 진입하지 못했을 때 겪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게 되는데, 이는 자녀가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얻게 하려는 열망으로도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이 과정에서 막대한 사교육비 부담과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져 청년들이 결국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실제 우리 사회의 불평등 수준은 확대되고 있다. 2003년 소득하위 20%인 1분위 평균소득은 93만원, 상위 20%인 5분위는 492만원으로 두 집단 간 격차는 약 399만원이었다. 5분위가 1분위의 5.29배였다. 그런데 2023년에는 5분위의 평균소득이 1분위의 5.72배에 달했다. 자산 불평등은 더욱 커졌다. 자산 최상위 20%와 최하위 20%의 순자산 격차 절대액은 2012년 약 5억4000만원에서 지난해 8억5000만원으로 급격히 확대됐다.

보고서는 불평등 수준이 심화할수록 미래 청년층 인구가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현재 불평등 수준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경우 2070년 35세 미만 인구는 약 542만명으로 전망됐지만, 불평등이 심화하는 시나리오에서는 약 347만명까지 급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구 구조의 변화는 생산연령인구의 위축과 노년부양비의 급격한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 불평등 심화시 2070년 노년부양비는 126.1%에 달한다. 노년부양비란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몇 명인지를 나타내는 비율로, 청년층의 부양 수준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경제력이 높은 계층이 더 높은 출산율을 보이는 점도 확인했다. 2002~2021년 건강보험 데이터 전수 맞춤형 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직장가입자 중 소득 상위 4분위의 합계출산율은 1.36인 반면 최하위에 속하는 1분위는 0.82에 그쳤다. 이 교수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소득 계층 간 출산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녀를 갖는 ‘출산의 선택성’이 강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아동 관련 인프라도 양극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즉, 육아나 교육 등 아동 관련 시장이 고소득층 위주의 프리미엄 서비스로 재편되면서 저소득층 가구가 이용할 수 있는 중저가 인프라나 사회 서비스의 질이 상대적으로 저하되는 ‘소수자 소외’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이번 연구는 불평등 완화가 단순한 사회적 형평성 또는 이념적 당위성 문제를 넘어 인구 구조 안정을 위한 필수적인 정책 과제임을 보여준다”면서 “정부는 교육 경쟁 완화와 주거 및 자산 격차 해소 등 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접근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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