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대통령 집무실은 용산에서 청와대로 돌아갔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새해가 되면 이재명정부도 기승전결 중에서 승의 단계로 넘어간다. 큰 이슈에서 성과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통령 발언은 아껴 써야 할 희소재(稀少材)인데 지나치게 미시적 차원의 언급이 잦다는 우려도 표명했다. 인터뷰는 지난 24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진행됐다. 진전된 상황은 추가 인터뷰로 보충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이 지난 24일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모두 당원을 리드하는 정치가 아니라 당원 뒤에 숨는 정치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여권 내에서는 “내란이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며 2차 종합특검을 추진 중이다. 이 대통령도 비상계엄 선포 1년을 맞아 ‘몸속 깊숙이 박힌 치명적인 암(내란 잔재)’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깨끗하게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순방 때는 ‘비상계엄을 극복하고 나라가 정상화됐다’고 얘기하다가 국내로 돌아와선 ‘아직도 내란이 극복되지 않았다’고 하는 건 이중적이다. 나라가 정상화됐다면서 3대(내란·김건희·채해병) 특검을 더 연장하자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특검에서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부분은 절차대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넘겨받아서 수사하면 된다. 국수본부장은 이재명정부가 임명하지 않았나. 공식 수사기관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인가. ‘우리 안의 내란’을 도려내자면서 중앙부처 공무원 휴대폰을 조사하는 것도 자충수다. ”
―이 대통령이 불필요한 발언으로 논란을 야기하는 사례가 잦다. 백해룡 경정을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수사에 투입하라는 지시는 여권 내에서도 과도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통령 주위에 쓴소리하는 인사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통합위원회 이석연 위원장 외에 누가 있나. 문재인 대통령 시절엔 당 원로들이 그 역할을 담당했는데 이재명정부에선 원로들의 존재감이 약하다. 대통령이 쓴소리를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그렇게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대통령과 측근 권력은 특별감찰관 임명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견제해야 한다. ”
―이 대통령이 국정 현안을 만기친람(萬機親覽)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번 부처 업무보고에서도 ‘깨알 리더십’이 확인됐다. 연명 의료 중단 인센티브 제공이나 탈모 치료제 급여화 발언 등은 즉흥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업무보고 생방송은 신선했는데 공항 검색대에서 책갈피에 숨긴 100달러권 지폐를 적발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나 ‘환단고기’를 사료(史料)로 볼 수 있느냐는 논쟁 등이 너무 부각됐다. 대통령의 시간이나 발언은 희소재다. 한정된 자원이라면 아껴 써야 한다. 대통령이 100의 자산 중에 절반 이상은 개혁 과제나 부동산, 환율 같은 큰 이슈에 쏟아붓는다고 국민이 느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 하나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 정부와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노동개혁 같은 주요 개혁 과제나 부동산 같은 큰 이슈에서 성과를 보여야 한다. ”
―검찰이 ‘대장동 사건’ 항소를 포기하자 야권 등에서는 국가 형벌권이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해소용으로 이용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여당이 추진 중인 형법상 배임죄 삭제나 재판소원제, ‘법왜곡죄’ 등 일련의 ‘사법개혁안’도 그 일환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됐으면 기소된 사건이라 해도 재판은 즉각 중지되는 것이 맞다. 대통령이 여기저기 재판받으러 다니면 국격도 국격이지만 일을 할 수가 없다. 거기까지는 국민이 인정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 측근인 정진상(전 민주당 대표 정무조정실장)과 김용(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이화영(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김만배(대장동 사건 핵심 피고인) 이런 사람들이 특혜를 받는 건 다른 차원이다.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는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 사안이었다. 사법 리스크를 피하려고 사법 제도를 바꾸는 일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
―이 대통령이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에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을 지명하는 파격 인사를 선보였다. 민주당 ‘중도보수론’이 현실화하는 것인가. 일각에선 내년 6·3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략적 인사라고 비판한다. “선거를 바라보는 정략적 목적이 왜 없겠나. 하지만 대통령의 구심력이 강하면 중도보수론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국민의힘을 극우로 규정하면서 “보수가 역할을 못 하니까 우리가 합리적 보수 가치를 지키는 역할까지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선 중도보수까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윤석열정부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시킨 데 이어 이번에 정파성이 강한 이혜훈 전 의원까지 포용할 정도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는 의지를 여권과 국민에게 공세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여당은 아직 이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
―그래서인지 대통령 따로, 여당 따로인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이 대통령은 검찰 개혁 속도 조절을 주문하고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빼라고 했는데 여당은 반대로 갔다.
“민주당의 또래 의원들(70년대생)과 얘기하다 보면 아직도 자신들은 약자이고 보수가 기득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처럼 재벌과 검사, 보수 언론이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다.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같은 언론개혁 법안도 민주당이 야당이라면 이해가 된다. 민주당은 어떤 법안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데 마치 야당처럼 최대치로 밀어붙인다. 그러다 논란이 불거지면 줄여나가는 식이다. 국민은 책임감 없는 집단으로 본다. ”
―‘명·청(이재명·정청래) 갈등’인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굿캅·배드캅’ 역할 분담인지 혼란스럽다. “명·청 갈등이나 굿캅·배드캅 분담으로 해석할 만한 사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정치문화가 잘못된 탓이다. 정청래 민주당은 지지층을 향해서만 세게 지르면 통한다는 성공 전략을 구사한다. 이건 이 대통령의 성공 모델인데 정 대표가 이를 따라 한다. 사병을 일으켜 왕이 된 조선 태종(이방원)은 거사가 성공한 뒤 사병을 혁파했다. 정권을 잡았으면 지지층 정치의 사다리를 치워야 한다. 그런데 정청래 민주당에선 ‘당원주권주의’라는 명분 아래 지지층 정치가 더 강화되고 있다. ”
―정 대표는 당원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소신이 확고하다. 얼마 전 대의원과 권리당원 ‘1인1표제’ 시도가 무산됐는데 재차 추진하기로 했다.
“잘못된 길이다. 정치인들이 상투적으로 국민 한 분, 당원 한 분의 목소리를 다 듣겠다고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다. 당원 권리를 강화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전 당원 투표에 부쳤을 때 찬성표가 86.81%였다. 그런데 실제 투표율은 16.81%에 불과해 대표성 논란이 불거졌다. 16.81%는 목소리 큰 당원들이다. 여당은 책임지는 정당이다. 이렇게 당을 운영하다 잘못되면 당원이 결정했다는 이유로 당원 책임으로 돌릴 건가. 당원을 리드하는 정치가 아니라 당원 뒤에 숨는 정치다. 장동혁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심 70%·민심 30%’를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국민의힘 얘기를 해보자. 장동혁 지도부는 지지층 결집이 먼저라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라는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국민의힘 ‘집토끼’가 언제부터 ‘윤 어게인’이나 ‘부정선거론’을 주창했나. 전통적으로 보수의 집토끼는 좋게 말하면 주류, 부정적으로 말하면 기득권층이다. 자산가와 대형 교회, 영남과 강남, 전문직 등이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나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 황교안 전 총리 같은 이들을 집토끼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당으로 치면 통합진보당 이석기류를 집토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집권하려면 그런 세력도 함께해야 하겠지만 그런 세력은 국민의힘이 강해지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소금물 농도를 낮추려면 물을 부어야 하는데 지금은 계속 불을 때는 형국이다. 국민의힘 안에는 당 지지율이 높아지기를 싫어하는 세력도 있다. 중도 확장이 되면 자신들의 비중이 줄고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양당 체제인 우리 정치에선 당은 망해도 2등은 떼 놓은 당상이다. 하지만 1, 2등의 격차가 더 벌어지면 어느 순간 논외의 정당이 돼서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
―장 대표는 당명도 바꾸고 중도 확장도 할 생각이지만 한동훈 전 대표와는 같이 못 간다고 한다.
“한동훈은 하나의 상징이다. 개인이라기보다는 과거와의 단절을 상징한다. 윤 전 대통령, 비상계엄과의 단절이고 탄핵 반대 세력과의 단절이다. 그래서 한동훈 얘기가 자꾸 나오는 것이다. 장 대표의 속마음이 뭔지는 정확히 모른다. 만약 장 대표가 한동훈만 제치면 본인 지배력이 튼튼해지고, 이 지배력을 가지고 세력 확장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큰 오산이다. ”
조남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