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튀르키예 참전용사에게 전한 감사, 보훈외교는 끝까지 가야 할 국가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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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튀르키예 참전용사에게 전한 감사, 보훈외교는 끝까지 가야 할 국가의 도리다
배은망덕, 결초보은, 인면수심.
은혜를 잊는 태도를 꾸짖는 말이 유독 많은 것은, 그만큼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 한국 사회의 깊은 정서이자 윤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더욱 그렇다. 나라의 존립을 가능하게 했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은 외교 이전에 상식이며, 정치 이전에 도덕이다.

최근 주튀르키예 한국대사관이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찾아 이재명 대통령의 뜻을 담은 선물을 전달한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이심표 국방무관은 지난 22~25일 이스파르타와 안탈리아 일대를 돌며 생존 참전용사 6명을 직접 만나 예우했고, 대통령이 국빈 방문 당시 준비한 홍삼 등 선물을 전했다. 그는 “튀르키예 참전용사의 희생과 용기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튀르키예는 한국전쟁 당시 16개 유엔 참전국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고, 미군 다음으로 가장 먼저 한반도에 도착한 나라다. 그래서 우리는 튀르키예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피로 맺어진 관계라는 역사적 기억이 그 바탕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달 튀르키예 국빈 방문 당시 앙카라 한국공원 참전기념탑에 헌화하고 생존 참전용사와 유가족을 만나 “튀르키예는 혈맹”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행보는 일회성 의전이 아니라, 한국이 수십 년간 축적해온 ‘보훈외교’의 연장선에 있다. 국가보훈부는 1975년 유엔 참전용사 재방한 사업을 시작으로, 전쟁 당시 한국을 도운 나라들의 참전용사와 유가족을 직접 찾아 예우하는 외교 정책을 이어오고 있다. 전쟁에 병력이나 물자를 지원한 나라의 참전용사를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예우하는 국가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캐나다의 한 군의관은 이를 두고 “보석 같은 사업”이라고 평가했고, 2019년 자비에 베텔 당시 룩셈부르크 총리는 “한국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 거의 유일한 나라”라고 극찬했다.

보훈외교는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다. 22개 참전국 국민들에게는 ‘70여 년 전의 은혜를 잊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우리 국민에게는 자긍심을 심어준다. 감동과 존중, 신뢰가 순환하는 외교 자산인 셈이다. 외교 관계가 일시적으로 흔들릴 때조차 이런 도덕적 기반은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무엇보다 이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빠르게 줄고 있다. 미국 보훈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내 한국전 참전용사는 약 100만 명이었으나, 고령화로 인해 2030년에는 20만 명 이하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약 90만 명 수준까지 줄었다. 특히 플로리다주의 경우 2020년 약 10만5천 명이던 참전용사가 최근 7만5천 명 수준으로 감소해, 불과 4년 사이 2만5천 명 이상이 세상을 떠났다.

미군의 한국전 참전 규모는 연인원 178만9천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3만6천여 명이 전사하거나 사망했고, 10만 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아직도 7천여 명이 실종 상태로 남아 있으며, 약 5천300구의 유해는 북한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숫자 하나하나가 희생의 무게다.

이제 보훈외교는 선택이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이다. 생존자가 줄어드는 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직접 감사의 뜻을 전할 기회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 한 분까지 예우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체계적인 파악, 지속적인 방문과 기록이 필요하다.

보훈외교는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다. 국가의 품격을 드러내는 기본 상식이자 원칙의 문제다. 은혜를 기억하는 나라만이 신뢰를 얻고, 신뢰를 쌓은 나라만이 진정한 외교 자산을 갖는다. 한국이 세계로부터 존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오래된 도리를 묵묵히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그 정신은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이어져야 한다.
 6·25 참전용사에 李대통령 선물 전달 사진주튀르키예대사관6·25 참전용사에 李대통령 선물 전달. [사진=주튀르키예대사관]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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