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의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 있는 윤봉길 의사의 동상. SNS 캡처 외교관 시게미쓰는 1932년 4월 29일 당시 주중 일본 공사 자격으로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 있었다. 그곳에선 일본 국왕 히로히토(裕仁)의 생일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개최됐다. 이는 1932년 초 상하이 사변을 일으킨 일본군이 중국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해 상하이를 점령한 것을 자축하는 의미도 있었다. 그런데 행사 도중에 느닷없이 폭발이 일어나 현지 주둔 일본군 사령관을 비롯한 장성 여럿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시게미쓰는 목숨을 건졌으나 크게 다친 오른쪽 다리를 잘라야만 했다. 폭탄을 던진 이는 바로 매헌 윤봉길(1908∼1932) 의사였다. 이 소식을 접한 장제스(蔣介石) 중국 국민당 주석은 윤 의사를 향해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한 청년이 해냈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후 중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연합국 정상회의가 열렸다. 장제스도 연합국 일원인 중국을 대표해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에게 한국의 독립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덕분에 카이로 선언에는 ‘적절한 시기에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라는 문구가 포함될 수 있었다.
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12월의 호국 인물’ 윤봉길 의사 선양 행사 참석자들이 윤 의사의 존영 옆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 매헌연구원 김학준 원장, 윤 의사의 친손녀인 윤주경 FITI시험연구원장.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올해 마지막인 ‘12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된 윤 의사를 기리는 현양 행사가 열렸다. 윤 의사의 친손녀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윤주경 FITI시험연구원장이 유족 대표로 기념식을 지켰다. 그는 “광복 80주년에 할아버지가 호국 인물로 선정돼 더욱 뜻깊다”며 “할아버지는 국가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보다는 스스로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고 직접 실천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국가와 이웃을 위해 작은 것이라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참으로 값진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