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벤처투자 시장에 대규모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제3의 벤처붐'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 종합투자계좌(IMA),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 등이 본격화되면서 그동안 이어졌던 '돈 가뭄'이 단숨에 '돈 홍수'로 바뀔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2020년 전후 '제2의 벤처붐' 당시 일부 업종에서 발생했던, 기업의 실적 대비 가치가 과하게 부풀려지는 '밸류에이션 버블'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특히 최근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인공지능(AI) 영역에 대한 버블 우려가 깊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내년 정부 주도 모태펀드 자금이 벤처펀드 등으로 유입되고, 국민성장펀드의 투자금도 집행되며 민간 벤처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면서 "특히, AI·반도체·모빌리티·바이오 등 성장성이 높은 산업에 지원금이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0년 '플랫폼 버블'의 악몽
제2의 벤처 붐이었던 2020년 전후에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과 맞물려 플랫폼 섹터가 가장 큰 수혜를 입었다. 단일 서비스 앱도 '플랫폼'으로 포장되며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사례가 속출했지만, 성장 한계가 드러나자 거품이 빠르게 꺼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온라인 명품 플랫폼 발란이다. 2022년 시리즈C에서 기업가치 3000억원을 인정받았던 발란은 올해 초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를 겪으며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태성회계법인이 산정한 발란의 청산가치는 20억8000만원 수준에 그쳤다.
미래에셋벤처투자, 신한캐피탈, 우리벤처파트너스, 한국성장금융, 코오롱인베스트먼트, SBI인베스트먼트 등 다수 투자사가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을 투자했지만, 회수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미 뚜렷한 AI 쏠림
시장에선 내년 자금이 본격적으로 풀리면 밸류에이션 버블이 다시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도 거품 논란이 끊이지 않는 AI 분야로 자금이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국내 스타트업 관련 통계를 취합하는 더브이씨(The VC)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국내 스타트업 투자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5% 감소한 296건이었지만, 투자 금액은 2조4326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비 152% 급증했다.
이 같은 '투자금 급증·투자건수 감소' 현상은 반도체 및 AI 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영향이 컸다. AI 분야 투자 건수는 40% 넘게 줄었지만, 투자액은 오히려 35% 증가했다. 리벨리온·퓨리오사 등 대형 기업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AI 기업 전반의 밸류에이션 자체가 높아진 결과다.
더브이씨 관계자는 "올해 11월까지 집계된 AI 스타트업 대상 투자는 전년도 AI 스타트업 대상 투자 금액의 약 96%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12월 투자까지 반영될 경우 올해 AI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전년도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도 같은 흐름이 포착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글로벌 AI 스타트업은 731억 달러(전체 VC 투자의 57.9%)를 조달했다. 오픈AI의 400억 달러 조달이 시장의 '초대형 라운드'의 신호탄이 됐고, 올해 AI 기업에 대한 VC 투자 규모는 2000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회수시장 재정비 필요전문가들은 자금만 풀리고 투자회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을 우려 사항으로 꼽았다. 국내 벤처 투자회수 수단은 사실상 기업공개(IPO)로 국한돼 있는 상황이다. 상장 심사 요건 변화 등 회수시장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벤처캐피탈협회와 함께 113개 벤처캐피탈 회사를 대상으로 '벤처캐피탈 투자 애로요인 및 정책과제 조사'를 실시한 결과 '투자금 회수가 과거보다 어려워졌다'는 응답이 71.7%에 달했다.
실제로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코스닥 신규 상장사 수는 73개 사다. 지난해 111개와 비교해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라면 최근 5년 내 코스닥 신규 상장 수는 최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코스닥 시장은 벤처기업의 등용문이자 모험자본의 공급처 역할을 한다.
이에 상장 심사 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전무는 "상장 시 경영권 방어를 위해 거래소에서 창업주의 지분을 20% 이상으로 유지하라는 조건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기업가치에 거품이 끼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문 전무는 "국내 벤처시장에선 IPO가 사실상 유일한 투자회수 수단인데, 창업자의 지분율을 20% 이하로 낮추면 IPO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IPO 성공을 위해서 투자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상대적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그냥 인정해주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VC 대표는 "올해 코스피는 많이 올랐어도 코스닥은 안 올랐다. 오른 섹터는 AI, 로봇, 바이오 정도였다"면서 "회수 시장의 활성화 측면에선 아직도 부족하다. 펀드를 많이 만든다고 해도 몇 년 뒤 회수 시장의 미래를 생각하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최근 ▲상장적격성 심사 강화 ▲저성과 기업 조기 퇴출 제도 정비 ▲지정감사제 개선 ▲기술특례상장 평가 신뢰도 강화 등 감독·심사 체계 변화 등의 내용을 담은 'IPO 및 상장폐지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놨다.
이와 관련해 변영훈 삼정KPMG 감사부문 대표는 "내년 IPO 시장은 수익성 중심의 기업가치 산정 기준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면서 "글로벌 IPO 시장의 회복이 국내에도 점진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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