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현관 비번까지 샜나” 불안 확산… 피해자 집단소송 움직임 [쿠팡 '3400만' 고객정보 유출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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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현관 비번까지 샜나” 불안 확산… 피해자 집단소송 움직임 [쿠팡 '3400만' 고객정보 유출 파문]
생활 밀착형 정보 담겨… 소비자 분통 이용자 주소·주문정보 등 민감 정보 ‘범죄 악용되면 어쩌나’ 우려 목소리 쿠팡, 공지 없이 피해자에 개별 안내 시민들 “책임감 있는 태도인지 실망” 참여연대 “사고 원인 명확히 밝혀야” 온라인 중심 피해자 모임 속속 결성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 1위 업체인 쿠팡에서 약 3400만건의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시민들 불안이 커지고 있다. 최근 사기범죄가 범행 대상을 무작위로 물색하는 데서 나아가 미리 파악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맞춤형으로 접근하는 식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이번에 노출된 이용자의 주소나 주문정보 등 생활 밀착형 정보가 범죄에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직장인 최모(33)씨는 30일 거주 중인 오피스텔 관리사무실에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상동기 범죄나 여성을 상대로 한 범행이 많아지고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집을 구할 때 공동현관이 없는 곳은 선택지에 두지도 않았다”며 “주소가 유출됐다고 하는데 공동현관 비밀번호도 포함됐을 것 같아 관리소장에게 서둘러 조치해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그러면서 “주문정보도 노출됐다고 안내받았는데 어떤 식으로 악용될지 겁이 난다”고 말했다.
쿠팡이 보낸 문자메시지 고객 계정 3370만개가 무단으로 유출된 사실이 드러난 쿠팡이 고객들에게 보낸 개인정보 노출 통지 관련 문자메시지. 최상수 기자 쿠팡의 대처 방식이 문제라는 반응도 많다.

쿠팡은 정보유출 피해를 본 이용자들에게 이메일과 문자로 개별적으로 안내했을 뿐 정작 이용량이 가장 많은 애플리케이션 첫 화면에는 공지나 사과문을 게시하지 않았다. 홈페이지의 경우 이날 오후 3시가 지나서야 박대준 대표이사 명의 사과문을 첫 화면에 배너 형태로 노출했을 뿐이다.

울산에 사는 직장인 남모(29)씨는 “최근에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하도 잦아 어차피 내 정보가 많이 떠돌아다닐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거대 기업이 책임을 통감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 화가 난다”고 전했다. 그는 “당장 피해가 보고된 바 없다고는 하는데 ‘이번 상황을 악용한 쿠팡 사칭 전화, 문자 메시지 및 기타 연락에 주의하라’는 말만 있을 뿐 이미 벌어진 정보유출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건지에 관한 이야기는 없는 게 책임감 있는 태도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 대표이사 명의 사과문에는 “향후 이러한 사건으로부터 고객 데이터를 더욱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현재 기존 데이터 보안 장치와 시스템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며 ‘피해 예방 조치’에 대한 계획만 밝혔을 뿐 ‘보상’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고개 숙인 쿠팡 대표 박대준 쿠팡 대표가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을 두고 제기된 ‘중국 국적 직원이 개인정보를 유출했고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이라는 의혹이 쿠팡의 책임 회피에 이용돼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쿠팡은 “고객 개인정보가 비인가 조회된 것으로 확인됐다. 쿠팡 시스템과 내부 네트워크망의 외부 침입 흔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이번 사고가 외부 요인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일부 언론이 중국 출신 직원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러한 의혹 제기가 쿠팡 측의 책임을 축소하기 위한 시도가 아닐지 매우 의심된다”며 “쿠팡은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해당 직원이 어떤 역할을 담당했었는지, 해당 직원의 역할과 보안등급이 전 국민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개인정보를 유출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지, 최소 5개월 동안 유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개인정보 보호체계를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지 철저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번과 같은 대규모 정보유출 사태를 막으려면 현재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둔 ‘해킹방지법’ 외에 집단소송제가 필요하다며 “결국 소비자 권리 보호 3법(집단소송법, 징벌적 손배제, 증거개시제도)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쿠팡으로부터 개인정보 유출 통보를 받은 피해자들 사이에선 법적 대응 등 집단행동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소송 참여 인원 파악·변호사 선임을 위한 카카오톡 오픈채팅 ‘쿠팡 정보유출 피해자 모임’ 대화방이나 집단소송 추진을 위한 온라인 카페 등이 개설돼 인원을 모으는 중이다. 한 온라인 카페 운영자는 공지를 통해 피해 사례 수집, 법무법인 선정, 소송 참가인단 모집 등 단계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30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연합뉴스 일부 변호사도 벌써 집단소송 참여 인원을 직접 모으기 시작했다.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이유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씨 부부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바 있는 김경호 법률사무소 호인 변호사는 페이스북에서 쿠팡 개인정보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진행한다며 12월24일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준호·김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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