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남정훈 기자] 순항하나 했더니 흔들린다. 창단 후 네 시즌 간 꼴찌에 그쳤지만, 다섯 번째 시즌인 올 시즌에 창단 후 최고의 출발을 보이던 페퍼저축은행이 첫 연패를 마주했다. 자고로 강팀의 조건은 ‘연승은 길게, 연패는 짧게’다. 페퍼저축은행이 연패를 ‘2’에서 끊어낼 수 있을까.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27일 김천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여자부 2라운드 도로공사와의 원정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0-3으로 완패했다. 지난 21일 정관장에 1-3으로 패한 데 이어 이날까지 패하면서 페퍼저축은행은 올 시즌 첫 연패를 당했다. 승점 16(6승4패)에 그대로 머물면서 중위권 팀들의 추격에 놓이게 됐다.
이날 경기 전까지 9연승을 달리며 독주하던 도로공사를 상대로 패한 것이긴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의 경기력이 워낙 좋지 않았기에 우려가 크다.
사실 이날 페퍼저축은행에겐 경기 초반 호재가 있었다. 도로공사 삼각편대의 한 축인 타나차(태국)가 1세트 초반 공격 후 착지 과정에서 발목을 삐끗해 경기에서 빠졌다. 그러나 도로공사의 ‘게임 체인저’ 김세인이 타나차 대신 들어와 1세트에만 서브 득점 1개 포함 6점, 팀 내 최다인 디그 8개를 걷어올리며 타나차의 공백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했다. 1세트를 맥없이 내준 페퍼저축은행에겐 2세트에 경기를 원점으로 돌릴 기회가 있었다. 세트 중반까지 18-11까지 앞서나가며 2세트를 무난하게 따내는 듯 했다. 그러나 올 시즌 페퍼저축은행의 돌풍을 이끈 한 축인 시마무라 하루요(일본)의 이동 공격과 속공이 연이어 강소휘에게 막히고, 1세트에 1점에 그쳤던 강소휘가 세트 후반 폭발하면서 20-25로 경기를 내줬다. 세트 후반에 2점을 따내는 동안 14점을 내줬던 장면은 지난 네 시즌 간 뒷심 부족에 울었던 페퍼저축은행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 했다.
3세트에도 세트 막판까지 23-23으로 접전을 펼쳤지만, 김세인에게 퀵오픈을 얻어맞고 매치포인트를 내준 데 이어 모마의 페인트성 백어백을 충분히 수비해낼 수 있었음에도 연결 범실로 코트에 공을 떨어뜨리면서 완패를 마주해야 했다. 도로공사의 전력이 강했지만, 페퍼저축은행의 지난 네 시즌 간의 고질병이었던 위기 관리 능력 부족과 20점 이후의 뒷심 부족이 그대로 드러난 경기였다. 매세트 아웃사이드 히터 한 자리의 선발 출전 선수가 바뀌는 모습이었다. 최근 공격 페이스가 좋은 박은서는 세 세트 내내 고정됐지만, 그 대각 한 자리는 1세트엔 고예림, 2세트엔 이한비, 3세트엔 박정아가 나섰다. 경기 전 장소연 감독은 “우리 아웃사이드 히터 네 선수의 색깔이 다 달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이라고 밝혔지만, 이날은 매 세트마다 주전이 바뀌었다는 건 그만큼 경기가 안풀렸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경기 후 패장 인터뷰에서 장 감독은 “은서는 공격에서 제 몫을 다 해줬다. 결국 그 반대쪽 한 자리가 아쉬웠다. 세트마다 리시브 안정감, 공격 등 가중치를 다르게 주다보니 다른 라인업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2세트에 앞서고 있다가 리시브가 불안해져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 아쉽다”라고 덧붙였다.
장 감독은 이날 페퍼저축은행의 경기력이 들쑥날쑥했던 근본적인 이유로 세터진의 불안을 꼽았다. 주전 세터인 박사랑이 1,3세트에 선발, 백업 세터 박수빈이 2세트에 주전으로 나섰고, 두 선수는 세 세트 내리 코트와 웜업존을 들락나락거렸다. 장 감독은 “세터들이 안정감을 주지 못하다 보니 경기가 흔들렸다. 그 부분에서 안정감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시마무라의 공격력도 다소 저조했다. 블로킹 1개 포함 6점을 올렸지만, 공격 성공률은 31.25%에 그쳤다. 2세트 대역전의 시발점이 됐던 피블로킹 2개 포함 이날 공격에서 블로킹을 3개나 당했다. 공격 효율이 12.5%까지 떨어졌다. 1라운드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시마무라가 상대들에게 분석당한 결과로 보느냐는 질문에 장 감독은 “시마무라에게 두 명의 블로킹이 따라붙는다. 시마무라를 이용한 득점이 나오면 그걸 분산시킬 수 있는데, 아무래도 세터들이 시마무라를 활용하는 패턴이 읽힌 것으로 본다. 영상 분석을 통해 새롭게 주문해야 할 것 같다”라고 답했다. 페퍼저축은행은 30일 IBK기업은행을 홈으로 불러들인다. 시즌 전 전망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IBK기업은행은 주축 선수들의 부상 이탈로 인해 7연패의 늪에 빠졌고, 김호철 감독이 자진사퇴했다. 수석코치였던 여오현 감독대행 체제에서 치른 첫 경기였던 지난 26일 흥국생명전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위기에서 탈출한 상황이다. 페퍼저축은행은 IBK기업은행의 1라운드 유일한 승리를 헌납하기도 했다. 자칫 IBK기업은행을 상대로도 연패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연패는 더 길어질 수 있다. 장 감독은 “다음 경기를 잘 준비해서 연패를 빠르게 끊어내겠다. 분위기를 추슬러서 잘 준비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김천=남정훈 기자 che@segye.com [현장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