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감·호흡으로 생명력 불어넣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글자 크기
무게감·호흡으로 생명력 불어넣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라이프 오브 파이’는 희망과 끈기, 인내, 선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결말은 두가지인데 어느 쪽을 믿을지는 관객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버전의 이야기를 우리 자신에게 들려주는가, 그 선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

한국 초연을 앞둔 ‘라이프 오브 파이(GS아트센터·11.29∼3.2)’의 인터내셔널 연출 리 토니는 26일 서울 GS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모두 어떤 면에서 파이와 닮아 있다. 관객 각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 초연을 앞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케이트 로우셀 협력 무브먼트·퍼펫 디렉터, 리 토니 인터내셔널 연출, 신동원 프로듀서·에스앤코 대표가 26일 서울 GS아트센터에서 신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에스앤코 제공 노벨문학상 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얀 마텔의 원작 소설을 무대로 옮긴 이 작품은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단둘이 살아남은 소년 파이의 227일간의 여정을 다룬다. 생존의 본능, 신앙과 이성, 진실과 이야기의 힘 같은 근본적 질문을 환상적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며 2019년 영국 초연 이후 전 세계에서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특히 세 명의 퍼펫티어(인형 조종사)가 하나의 호랑이를 ‘연기’하는 방식은 “무대 예술의 새로운 지평”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라이브 온 스테이지(Live on Stage)’라는 장르를 새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리 토니는 “영상 디자인, 조명, 음악, 퍼펫 등 모든 요소가 결합해 시각적·정서적으로 매우 몰입적인 공연을 만든다”며 “관객은 그저 보는 존재가 아니라 이야기의 공동 창작자로 참여하게 되고, 상상력으로 동물과 바다의 상황을 직접 살아 움직이게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중간에 등장한 ‘리처드 파커’는 제작진이 자랑한 대로였다. 세 명의 퍼펫티어가 머리와 시선, 심장·호흡, 골반·후신 움직임 담당으로 역할을 나누되 서로 신체를 맞대거나 연결하며 호흡과 리듬을 공유해서 생동감 있는 호랑이를 연기했다.

퍼펫 디렉터 케이트 로우셀은 생동감있는 연기의 핵심으로 ‘무게감’과 ‘호흡’을 강조했다. “퍼펫을 살아있는 존재처럼 보이게 하려면 먼저 물리적인 법칙, 즉 ‘무게감’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호랑이의 그 육중함을 배우들이 신체로 구현해내지 못하면 관객의 환상은 금방 깨지고 맙니다. 하지만 생명력을 불어넣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바로 ‘호흡’입니다. 머리, 심장, 다리를 맡은 세 명의 퍼페티어가 서로 예민하게 교감하며 하나의 호흡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인형이 ‘심장’을 가진 생명체로 다시 태어납니다. ”
‘라이프 오브 파이’의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세명의 퍼펫티어가 26일 서울 GS아트센터에서 시연해보이고 있다. 에스앤코 제공 ‘리처드 파커’와 함께 바다 위를 표류하는 주인공 파이는 박정민과 박강현이 연기한다. 리 토니는 “고난과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것이 파이 연기의 핵심”이라며 “정민 배우와 강현 배우는 깊은 감정의 층위를 표현하면서도 관객을 그 여정 안으로 초대하는 용기 있는 균형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두 배우 모두 정말 뛰어나고 개성이 확실합니다. 파이라는 인물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내는지를 보여주는 존재라 누구나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죠. 그래서 정민 배우와 강현 배우가 자신의 개성과 해석을 담아 완전히 다른 두 버전의 파이를 만드는 점이 정말 훌륭합니다. ”

한국 프로덕션을 이끄는 신동원 에스앤코 대표(프로듀서)는 “영국에서 처음 리처드 파커와 눈이 마주쳤을 때 느꼈던, 살아있는 생명체를 마주한 듯한 전율을 한국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며 제작 배경을 밝혔다. 두 주연에 대해선 “박정민 배우는 감정의 섬세함과 몰입도가 뛰어나고, 박강현 배우는 무대 장악력과 캐릭터 소화력이 매우 강하다”고 소개했다.

리 토니는 소년이 호랑이와 한 배를 타고 바다에서 표류하는 이야기가 우리 삶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파이와 호랑이가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을 꼽았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둘은 잠시나마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매우 짧고 조용하지만 희망, 평화, 고요가 스쳐 지나가며 감정이 깊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폭풍 장면은 세트의 장대한 전환 트릭과 함께

희망이 절망으로 단숨에 뒤집히는 감정의 충격을 만들어 냅니다. 이 대비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입니다. ”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