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의공습]⑪트럼프 압박 '반짝 효과'…위조품 천국 호찌민 벤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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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의공습]⑪트럼프 압박 '반짝 효과'…위조품 천국 호찌민 벤탄시장

"언니, 언니, 디올 원해? 구찌 원해? 가방 다 있어."


지난달 찾은 베트남 호찌민 벤탄시장. 입구를 지나자마자 한국어를 쓰는 베트남 현지인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장은 수십 개의 비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고, 양 옆에는 한 평 남짓한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작은 가판대에는 수백 개의 명품 위조품 가방과 지갑이 층층이 걸렸다. 매장 앞에서는 명품 로고가 박힌 티셔츠와 벨트를 찬 상인들이 지나가는 관광객을 유인하기 위해 경쟁하듯 상품을 들이 밀었다. 골목은 한국인을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호찌민 최대의 '짝퉁 시장'은 다시 활기로 가득했다.




美, 지적재산권 침해 지목 관세 46% 폭탄…관광도시 집중 단속

벤탄시장은 베트남 최대 경제도시인 호찌민의 쇼핑 명소로, 사이공스퀘어와 함께 베트남 위조품 산업의 핵심축이었다. 하지만 올들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베트남을 '지식재산권 침해 중심지'로 지목하고, 베트남산 수입품에 대한 46%의 상호관세 부과를 천명하면서 사실상 '사장(死場)'이 됐다.


베트남 정부가 대대적인 위조품 단속을 벌이면서 대부분 매장이 휴업에 들어갔고, 시장은 호객대신 적막이 감돌았다. 하노이와 다낭·나트랑 등 주요 관광 도시에서도 위조품에 대한 집중 단속이 이뤄졌다. 베트남 정부에 따르면 한 달간 전국에서 위조품 단속을 진행한 결과 3891곳을 점검해 3114곳에서 위반 사실을 적발했다. 총 집행 가치는 6300억 동(약 346억원)에 달했으며, 국고 환수액은 3600억 동(약 198억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의 단속이 느슨해지면서 주요 짝퉁 시장은 다시 활개치는 모습이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 주민은 "몇 달 전만 해도 트럼프 때문에 여기 다 죽어서 물건도 없었다"며 "(지금 보면) 아직 완전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그 때보다 판매자와 관광객 둘 다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베트남 패키지 관광 필수코스 '짝퉁시장' 부활 

실제 이날 둘러본 벤탄시장은 외국인 패키지 여행의 필수코스였다. 크리스찬 디올과 구찌, 루이뷔통, 롤렉스 등 럭셔리부터 나이키, 아디다스, 폴로, 뉴발란스, 노스페이스 등 아웃도어까지 명품 드시장 상인들은 한국 단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유창한 한국어로 "언니, 진짜 똑같다"면서 유명 명품 브랜드 위조품 가방을 권유했다. 겉보기엔 제법 그럴듯한 가방은 가까이 뜯어보면 실밥이 빠져 나왔고 이음새도 매끄럽지 못했다.


"더 좋은 것은 없느냐"라고 대꾸하자 상인은 매대 깊숙한 곳에서 새로운 가방을 꺼냈다. 가방 내부를 상세하게 소개하며 "진짜랑 똑같다"고 거듭 강조했다. 가격은 60만동(약 3만원대). "닷 꽈(비싸다)!"라고 외치며 가방을 내려놓자 상인은 재빨리 계산기를 꺼내 내밀었다. 기자가 50만동을 입력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안돼, 안돼!"를 반복하며 55만동을 제시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저쪽이 더 저렴하다. 그만 가자"고 말하자 이를 눈치챈 상인은 급히 팔을 잡아끌며 "더 싸게 해줄게"라고 말했다. 흥정은 순식간에 40만동까지 떨어졌고, 상인은 "현금, 카드, QR 모두 된다"면서 결제 방식을 안내했다.


특히 벤탄시장은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아웃도어웨어를 비롯한 글로벌 브랜드의 의류가 넘쳐났다. 호객에 나선 상인들은 "가짜(fake)가 아니다"라고 했다. 해당 브랜드의 생산 공장에서 나온 '로스 제품(브랜드의 생산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한 여분이나 불량, 재고 상품)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은 전 세계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장이 밀집된 만큼 직원들이 정품을 빼돌리다 빈번하게 적발됐다는 점을 짝퉁 판매에서 활용한 것이다.


다만 베트남은 중국산 짝퉁을 가져다 관광지에서 판매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 짝퉁 생산지로 부상하고 있다. 베트남 온라인 매체 '베트남넷(Vietnam Net)'에 따르면 하노이·박장·푸토 등지에서 화장품, 건강보조제, 식용유, 의약품 등 생활·의료용 제품을 공장 단위로 대량 생산하다 적발된 사례가 잇따라 확인됐다. 단속 과정에서 수십 톤 규모의 위조 식품·보조제, 10만건 이상의 온라인 주문 기록, 수백 개 브랜드를 모방한 분유·의약품이 적발됐다.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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