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년 동안 서방권에서는 새로운 대형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가 거의 지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바뀔 수 있다. 각국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전의 역할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기관이 다시 원전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24일 KB증권은 '2026. 무엇이 40년 만의 원전 사이클을 만드는가'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에 따른 '원전 르네상스'가 찾아온 이유로 정부 금융지원과 발주 형태 변화를 꼽았다. 특히 한국 기업이 내년부터 현실화한 원전 건설의 핵심 수혜자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가 앞장서 원전 투자 금융 지원예전에는 원전 건설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전기요금에 그 비용을 그대로 반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민간 금융기관들은 원전 투자를 기피하게 됐고, 원전 산업 자체가 사실상 멈춰 섰다. 하지만 최근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금융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RAB(Regulated Asset Base)' 모델은 정부가 일정 수익을 보장해 주는 구조로, 민간자본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 미국 정부 또한 'LPO(Loan Program Office)'를 통해 대규모 융자 지원을 강화하고 있고, 민간 기업이 원전 프로젝트를 상장 시장에서 자금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즉, 원전이 다시 '투자 가능한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대규모 연속 발주, 원전 산업 생산성 높여
발주 형태의 변화도 중요한 포인트다. 과거에는 국가별로 하나씩 산발적으로 원전을 짓다 보니 규모의 효율이 떨어지고 공사비가 불어나곤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규모 연속 발주(Fleet Order)', 즉 여러 기를 한꺼번에 발주하고 같은 설계를 반복적으로 건설하는 방식이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부품 생산과 시공 과정이 표준화되고, 학습효과를 통해 원가가 안정화되며 공사 기간도 단축된다. 중국, 프랑스, 한국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미국 역시 과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단일 노형(reactor type)을 정하고, 동일한 설계로 여러 원전을 연속 건설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마치 자동차나 항공기처럼 원전 건설을 '제조업적 공정'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개별 프로젝트의 위험이 줄고, 산업 전체의 생산성과 예측 가능성이 커진다.
서방에선 한국 기업만이 유일하게 전 공정 경험
한국은 이런 글로벌 원전 재도약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유럽은 원전 확대 의지를 갖고 있지만, 실제 건설과 프로젝트 관리, 기자재 제작 등에서는 노하우가 많이 사라졌다. 반면 한국은 이미 다수의 대형 원전을 국내외에서 성공적으로 완공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설계, 시공, 기자재 제작, 관리 등 전 밸류체인에 걸친 역량이 축적돼 있다. 서방 국가들이 필수적으로 찾을 수밖에 없는 파트너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정혜정 KB증권 애널리스트는 "2025년은 기대감이 원전산업 주가를 견인한 한 해였다면, 2026년은 수주·착공과 같은 원전 프로젝트의 실질적 진전이 가시화되는 '현실화 원년'이 될 것"이라며 "원전 투자 전략의 핵심을 SMR보다 대형원전 밸류체인, 미국보다 한국의 원전기업, 설계·원전 인프라 영역보다는 프로젝트 관리 (PM)·수행역량 보유 기업에 두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KB증권은 한국전력, 현대건설, 두산에너빌리티를 내년 원전산업의 최선호주로 제시했다.
조시영 기자 ibp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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