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액 80억원 중 97.5%에 해당하는 78억원이 보장금액인 파격적인 계약이다. 게다가 계약금이 무려 50억원이다. 계약 내용만 봐도 박찬호 영입전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두산 관계자는 “박찬호는 리그 최고 수비력을 갖춘 유격수로 젊은 선수들이 많은 팀 내야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자원"이라며 "리드오프로서 기량은 물론 공격적인 주루 능력도 갖춰 팀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서 짚어보자. 박찬호가 과연 총액 80억원, 보장금액 78억원을 받을만한 선수인지. 물론 FA 시장은 선수가 가진 가치보다는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이번 FA 시장에서 박찬호보다 나은 야수 자원은 거의 없다. 빅2 중 하나인 강백호가 타격 능력은 월등하지만, 강백호는 명확한 수비 포지션이 없다. 게다가 박찬호는 내야 수비의 중심인 유격수다. 방망이보다는 수비가 우선시되는 포지션이고, 리그 평균 이상의 유격수를 내부 육성으로 길러내기 쉽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두산이 80억원을 지를만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박찬호의 타격 능력, 게다가 두산이 홈으로 쓰는 드넓은 잠실구장을 고려하면 두산 이적 후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16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5 K베이스볼 시리즈 대한민국과 일본의 평가전. 9회말 2사 주자없는 상황 김주원이 동점 솔로홈런을 쏘아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호의 통산 성적은 1088경기 타율 0.266(3579타수 951안타) 23홈런 353타점 187도루 출루율 0.332, 장타율 0.328, OPS 0.660이다. 타격 능력만 놓고 보면 잘 봐야 리그 평균 정도다. 물론 최근 3년간 박찬호의 타격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23시즌에 생애 첫 3할 타율(0.301)을 기록했고, 2024시즌에도 타율 0.307로 2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생애 첫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올해는 타율이 0.287로 떨어졌지만, 유격수 치고는 쏠쏠한 타격이었다.
16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비 평가전 '2025 케이 베이스볼 시리즈(K-BASEBALL SERIES)' 일본과의 2차전 경기. 대한민국 김주원이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극적인 동점 솔로홈런을 친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뉴스1 다만 박찬호에겐 일발장타로 경기 분위기를 뒤집을 만한 능력은 거의 없다. 통산 23홈런 타자다. 한 시즌 최다 홈런이 5개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똑딱이’ 타자다. 그런 타자에게, 아무리 유격수비가 리그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연평균 20억원을 지르는 게 과연 합리적인 가격인지는 의문이다. 박찬호의 몸값이 오른 건 지난해 겨울 동갑내기 유격수인 심우준이 한화와 4년 최대 50억원의 계약을 맺은 게 큰 역할을 했다. 둘의 수비를 동급으로 봤을 때 타격은 박찬호가 한 수 위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우준이 올 시즌 타율 0.231 2홈런 22타점 11도루로, 리그 최악의 타자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의 극악의 타격능력을 보여줬다. 반면 박찬호는 평타 이상을 쳤다. 덕분에 박찬호의 주가는 더욱 뛰어올랐다. FA 계약 시작 가격이 50억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 박찬호의 4년 최대 80억원 계약으로 인해 KBO리그 정상급 유격수의 FA 계약 시작가는 80억원부터 시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KBO리그 ‘유격수 평화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김주원(NC)이 향후 해외 진출을 하지 않고 KBO리그에 잔류한다고 보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게다가 김주원은 박찬호가 절대 가질 수 없는, 너무나도 명확한 툴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야구팬들은 그걸 최근 목격했다. 바로 지난 16일 일본과의 K-베이스볼 시리즈 2차전 6-7로 뒤진 9회말 2아웃에서 날린 극적인 동점 솔로포다. 김주원은 20홈런 이상을 때려낼 수 있는 파워툴이 있다. 김주원이 국내에 남아 FA 협상을 하게 되면 80억원은 기본으로 깔고 100억원을 넘어 120억원 이상의 대형 계약도 따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래저래 박찬호의 이번 FA 계약은 향후에도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