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18일 “박찬호와 4년 총액 80억원(계약금 50억원·연봉 28억원·인센티브 2억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FA 시장이 지난 9일 문을 연 이후 9일 만에 나온 1호 계약이다.
비(非) 두산 출신이 FA로 두산에 입단한 건 2015년 장원준에 이어 2026 FA 박찬호가 역대 두 번째다. 홍성흔이나 양의지는 프로 생활 시작을 두산에서 했다가 다시 불러들인 케이스다. 그만큼 그동안 두산은 내부 팜 시스템을 통한 선수 육성과 내부 FA 잔류에만 주력했지만, 이번 겨울에는 내야진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박찬호를 위해 과감하게 지갑을 풀었다.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두산은 박찬호의 원 소속팀인 KIA, 유격수 보강을 위해 나선 KT와의 경쟁을 뚫고 ‘박찬호 영입전’에서 승리했다. 총액 80억원 중 78억원이 보장금액일 정도로 두산은 박찬호 영입에 공을 들였다. FA 시장 개장 첫 날부터 박찬호를 만나며 적극적으로 계약에 임했고, 박찬호와 부모님, 아내, 아이들에게 줄 유니폼 6벌을 준비해 선물했다. 유니폼의 뒤엔 박찬호의 이름과 V7을 새겨 넣었다.
두산 관계자는 “박찬호는 리그 최고 수비력을 갖춘 유격수로 젊은 선수들이 많은 팀 내야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자원”이라며 “리드오프로서 기량은 물론 공격적인 주루 능력도 갖춰 팀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건대부중-장충고 등 학창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던 박찬호는 구단을 통해 “어린 시절 두산 베어스 야구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 그 팀의 유니폼을 입게 돼 영광스럽고 벅차다”며 “좋은 계약을 해주신 두산 베어스 박정원 구단주님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어린 시절부터 내 야구의 모토는 ‘허슬’이었다. 지금까지 해온 플레이가 두산 베어스의 상징인 '허슬두'와 어울릴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드린다”면서 “12년간 응원해주신 KIA 타이거즈, 또 광주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그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박찬호는 2014년 신인 드래프트 2차 5라운드 50순위로 KIA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19년부터 풀타임 주전으로 도약한 박찬호는 최고 수준의 유격수비에 비해 타격이 다소 아쉬웠던 타자였지만, 2023시즌 첫 3할 타율(0.301)을 기록하며 타격 재능도 만개했다. 2024시즌엔 타율 0.307(515타수 158안타) 5홈런 61타점 20도루를 기록하며 생애 첫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현역 최고의 유격수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1군 통산 성적은 1088경기 타율 0.266, 23홈런, 35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660. 올해에도 134경기 타율 0.287, 5홈런, 42타점을 올렸다. 지난해 FA 시장에서 박찬호와 동갑내기지만, 타격 능력에서는 더 떨어지는 심우준이 한화와 4년 최대 50억원의 계약을 맺으면서 올 겨울 FA 자격을 얻는 박찬호의 몸값 폭등이 지난 겨울부터 예상됐다. FA 시장 개장 직후 한때 계약기간 4년 이상에 100억원대의 계약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계약기간을 4년으로 낮추면서 80억원의 ‘잭팟’을 터뜨렸다.
박찬호는 한 시즌 최다 홈런이 5개 일정도로 일발장타로 경기를 바꿀 수 있는 타격능력은 없지만, 2할 후반~3할대의 타율에 3할5푼 이상의 출루율로 테이블 세터 역할은 너끈히 해줄 수 있는 타자다.
박찬호의 진가는 수비다. 박찬호는 올해 정규시즌에서 1114.1이닝을 유격수로 출장하면서 실책도 16개에 그칠만큼 수비력 하나만큼은 리그 최고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통산 187개의 도루에 성공하는 등 한 시즌에 30개 이상 도루를 해낼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올 시즌 화두를 ‘내야진 세대교체’로 정한 두산은 안재석, 박준순, 오명진 등 어리고 재능있는 내야수들이 대거 등장해 성장했지만, 이들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유격수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그간 FA 시장에서의 스탠스를 버리고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20일 두산의 12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원형 감독은 내야수비의 중심축이 되어줄 수 있는 유격수 박찬호를 취임 선물로 받은 셈이다.
A등급 박찬호를 영입한 두산은 KIA에 보호선수 20인 외 보상선수 1명과 전년도 연봉 200%(9억원) 또는 전년도 연봉 300%(13억5000만원)를 내준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