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전자공시 시스템]일진홀딩스가 자회사 일진전기 지분을 활용해 교환사채(EB) 발행을 추진하면서 자회사 지분 담보 EB 발행이 주목받고 있다. EB는 일정 기간 이후 채권을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최근 정부·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개정을 추진하면서 자사주 담보 EB 발행을 하는 곳들이 늘면서 '편법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비해 자회사 지분을 담보로 한 EB 발행은 이런 논란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이 방식은 경영권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안정적 현금조달 루트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도 이런 방식으로 EB 발행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일진홀딩스를 비롯해 LG화학, HD한국조선해양, 이스트소프트 등이 자회사 지분 담보 EB 발행을 추진 중이다.
이스트소프트는 지난달 자회사 이스트에이드 지분 8.06%를 담보로 60억원을 조달했고, LG화학은 지난 5월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활용해 약 10억 달러(약 1조3945억원 규모) 해외 EB를 발행했다. HD한국조선해양도 지난 2월 HD현대중공업 지분 1.95%를 담보로 6000억원 규모 EB를 찍었다. 발행사 입장에서 자회사 담보 EB는 자산을 유동화해 안정적으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다. 경영권 유지에도 큰 부담이 없어 이런 방식을 선호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게 IB업계 분석이다.
다만 자회사 지분 담보 EB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주가가 오르면 EB 투자자들이 교환권을 행사해 기존 주주 지분이 희석되고, 주가가 내리면 투자자들이 교환권을 행사하지 않아 채권으로 남게 되면서 모회사가 상환 부담을 지게 된다. 주가가 상승 또는 하락해도 발행사와 주주 모두 불리한 구조다.
특히 최근 이스트소프트 EB처럼 표면금리와 만기이자율이 모두 0%인 '빵빵채권' 형태가 많다. 사실상 주가 상승에 기대를 거는 구조라 교환가액이 현 주가 대비 10~15% 할증돼 책정되면서 주가가 발행가 아래로 떨어지면 투자자가 손실을 볼 위험이 크다. 또한 대규모 EB 발행은 특정 투자자에게 상당한 지분을 몰아주며 경영권 개입 여지를 만들 수 있어 소액주주 권익을 침해하고 모·자회사 지분 구조를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편 자사주를 담보로 한 EB 발행은 2차 상법 개정과 맞물려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엔 태광산업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태광산업은 자사주 전량을 담보로 3200억원 규모 EB를 발행하려다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가처분 소송에 직면했다. 트러스톤은 EB 발행이 실질적으로 경영권 방어용 제3자 배정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대원제약과 엠케이전자도 최근 EB 발행을 통해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EB 발행으로 미리 규제 리스크를 피하려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주경제=송하준 기자 hajun825@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