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대응이 전 세계적인 해결 과제로 떠오르면서 ‘기후관련 기술’(Climate Tech·기후테크)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후테크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기후에 사람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모든 기술을 일컫는다. 온실가스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땅속에 저장하는 기술, 태양광·풍력·수력 등 청정에너지 활용 기술, 물·비료 사용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농업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전 세계 기후테크 시장 규모는 600억달러(약 80조원)를 돌파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2년 기후테크 시장 규모가 1480억달러(약 20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주요 선진국들은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강원도가 기후테크를 7대 미래산업 중 하나로 선정,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그 중심에는 국내 최초 기후변화 전문연구기관 한국기후변화연구원이 있다.
최악의 가뭄 사태를 맞고 있는 강원 강릉시 오봉저수지가 바짝 말라붙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강릉=뉴스1 ◆2008년 설립… 年 100건 이상 연구·사업 수행 11일 강원도에 따르면 도 출자·출연기관인 기후변화연구원은 2008년 설립됐다. 기후변화 현상을 체계적으로 조사·연구하고 이를 통해 중장기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목표다. 관련 정책 개발에도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외에도 온실가스 감축, 탄소배출권 관리·운영, 신재생에너지 전환 등 다양한 분야 연구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로 전환을 지원한다.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으로부터 연구 의뢰도 받고 있다.
기후연구원이 연구수행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연구 의뢰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기후연구원이 2020년 수주한 정책연구·사업은 74건이었다. 2021년 85건, 2022년 97건, 2023년 105건, 2024년 115건으로 매년 10% 안팎으로 늘었다. 올해는 8월말까지 80건을 수주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지난해 실적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현재 수행 중인 과제는 ‘지자체별 온실가스 배출 유형과 특성 분석’, ‘공공부문 온실가스 목표관리제 대응’ 등이다.
연구원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역량을 입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몽골, 네팔, 캄보디아, 베트남 등 8개국에서 정책자문과 연구 활동을 수행 중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 의뢰로 키르기스스탄에서 진행 중인 소규모 수력발전소 건설 사업이 대표적이다. 수자원을 활용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이 목표다. 국제기구, 현지 정부·기업과 협력을 통한 해외 사업 다변화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학계와 협력해 관련 인재를 양성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연구원은 지난 2월27일 세종대와 기후변화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세종대는 전의찬 환경에너지융합과 석좌교수를 중심으로 20년 이상 기후변화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인재를 배출한 대학이다. 연구원과 상당한 시너지가 기대된다. 이외에도 상지대, 관동대 등과 연이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연구원 업무협약 건수는 2023년 10건에서 지난해 16건으로 늘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9개 기관과 힘을 모으기로 했다. 지난달에는 강원소방본부와 만나 강원 지역에서 자주 발생하는 산불, 가뭄 등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연구원이 업무협약에 적극적인 이유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종합적인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민·공무원 맞춤 교육… 도, 기후테크 지원
기후연구원은 기후변화 위기에는 국민이 적극 동참해야 하는 만큼 지역·시민단체를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미취학아동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플라스틱, 너를 알고 싶어’, ‘사라질 위기의 친구들을 찾아라’, ‘지구가 아파요’ 등 주제로 47차례에 걸쳐 교육했다. 참여 학생만 900명에 달한다. 공무원 등 성인 대상 교육 횟수는 172회로, 참여 인원만 6700명에 이른다.
각종 세미나와 포럼을 통한 기후변화 위기 알리기와 해법 모색 노력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연구원은 올해 6월13일 원주 인터불고호텔에서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원기후테크포럼 2025’를 개최했다. 서울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8회에 걸쳐 ‘기후 리더십 아카데미’를 개최하기도 했다. 여기에선 정보공유를 통한 국내 기후변화 대응 역량 강화 방안이 논의됐다. 연말에는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기후변화 분야 국내 최대 규모 ‘2025 대한민국 탄소포럼’을 연다.
연구원은 강원도가 7번째 미래산업으로 선정한 기후테크 지원사격에도 적극 나선다. 정부는 지난해 기후테크 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10개 유니콘 기업을 육성, 수출 100조원 달성을 목표로 145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도는 여기에 발맞춰 기후테크를 육성키로 했다. 강릉·삼척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메가프로젝트 예비타당성 대상 사업 선정, 춘천 수열에너지 클러스터, 동해안 수소 저장·운송 클러스터 등 9000억원 규모다.
연구원은 기반을 확충하고 경쟁력을 높이고자 ‘기후변화대응 복합센터’를 건립하고 있다. 한강수계기금 105억원과 도비 70억원 등 총 175억원을 투입해 춘천시 동내면 신촌리에 연면적 3154㎡ 규모로 지어진다. 내년 6월 준공된다. 센터는 연구업무 공간을 비롯해 교육·전시·체험·홍보 공간으로 구성된다. 기후변화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적 핵심 기지로 역할을 할 예정이다. 연구원은 창업지원센터도 둬 창업기업 육성도 지원할 방침이다.
기후연구원이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데는 김동일 원장을 비롯한 연구·사무직원의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됐다. 김 원장은 지난해 8월 취임한 이후 조직구조를 개편, 부서 간 협업을 강화하고 예산을 절감했다. 아낀 돈은 연구지원에 쓰였다. 연구원 재정자립도는 85% 수준으로 전국 지자체 산하기관 중 최상위권이다. 성과를 인정받아 연구원은 3년 연속 기관 경영평가 A등급을 달성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 등으로부터 가족친화인증을 획득한 점도 성과다.
송명준 연구원 경영기획실장은 “그간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왔다”며 “강원도를 넘어 대한민국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는 모범적인 기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동일 기후변화연구원장 “강릉 가뭄, 생존까지 위협 …기후전략 따라 삶 달라져”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
11일 세계일보와 만난 김동일(사진) 한국기후변화연구원장은 극심한 가뭄으로 식수난을 겪고 있는 강릉시를 예로 들었다. 김 원장은 “올여름 강원 영동지역 폭염 일수는 평년보다 3.5배 정도 많았다”며 “열대야 역시 평년의 9.8배 수준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대표 식수원인 오봉저수지에 담긴 물이 평소보다 빠르게 증발했다는 의미”라며 “이번 강릉 가뭄은 기후변화가 우리 일상에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중요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강원도가 기후테크를 7번째 미래 산업으로 선정하고 연구원 지원을 대폭 늘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지난 3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한편 관련 기술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기후테크 기반시설을 구축·확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원장은 도 기조에 발맞춰 올해 연구원 예산 확보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지난해보다 60% 늘어난 19억원을 따냈다고 전했다. 김 원장은 “강릉은 식수난을 겪고 있는 반면 선제적으로 지하댐을 건설해 생활용수를 확보한 인근 속초시는 도심에서 물을 뿌리며 노는 ‘워터밤’을 개최했다”며 “기후변화 대응 전략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강원 지역이 기후테크 산업 최적지라고 평가했다. “강원은 전체 면적의 82%가 산림이고 전국 산림의 20%를 차지, 대한민국의 허파로 불린다”며 “댐과 수자원이 집중돼 있고 동시에 재생에너지 자원 잠재력이 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지역적 특성과 연구원의 전문적인 기후변화 연구 역량이 합쳐지면서 현실성 있고 효과적인 정책과 전략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춘천에 81만6000㎡ 규모로 조성 중인 국내 최초 수열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가 바로 기후연구원 작품이다. 물을 활용한 재생에너지 개발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게 된다.
김 원장은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펼친다고 해도 국민의 참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아무도 없는 방에 불을 끄는 등 쉽지만 어려운 작은 실천이 모일 때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으니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연구원도 정책연구, 산업지원, 국제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해 든든한 뒷받침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춘천=배상철 기자 b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