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브랜드를 비롯해 가품 피해가 늘면서 정부의 단속도 한층 촘촘해졌다. 특히 온라인 시장에서 짝퉁이 급증하면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위조품을 빠르고 정확하게 잡아내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최근 급증한 유튜브와 틱톡 등 라이브 생방송을 통한 짝퉁 판매는 단속이 쉽지 않은 데다, 전 세계에서 유통 중인 K-브랜드 위조품은 피해 기업이 개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만큼 정부의 예산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특허청은 소비자 중심의 '감정지원 시스템' 구축을 위해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29억원 가량을 책정했다. 브랜드 제조사(권리자)와 소비자가 양방향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으로, 소비자들이 구매 제품의 위조품 여부를 판별할 수 있도록 특허청이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e커머스에서 물건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환불을 원해도 권리자의 짝퉁 여부가 확인돼야 한다"며 "권리자들의 감정 부담을 낮추기 위해 공공기관에서 감정 업무를 부담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AI 기술 탑재…특허청, '감정지원 시스템' 구축 나서
이 플랫폼의 핵심은 AI를 접목한 위조품 감정이다. AI가 정품과 유사성을 판독한 뒤, 권리자가 플랫폼에 접속해 감정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 특허청은 AI를 도입해 권리자들의 비용 부담을 낮추고 위조품 감정 업무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특허청은 올해 초 산하기관인 한국지식재산보호원과 민관협의체인 '위조상품 유통 방지 협의회' 회원사들과 함께 감정 지원 시스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당시 권리자들은 감정과 관련된 정보가 영업비밀인 만큼 플랫폼 참여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특허청은 해당 정보가 공공기관 중심으로 공적인 분야에 사용될 수 있도록 두꺼운 보호 체계를 마련하고, 브랜드사와 정보 범위에 대해 협의하기로 했다.
앞서 특허청은 AI 기반 위조상품 단속을 위해 지난해 예산 7억원을 신규로 편성했다. e커머스와 소셜미디어(SNS) 등 온라인 시장에서 유통되는 위조품을 차단하기 위한 기술투자였다. 올해 약 160여개 브랜드가 참여했으며, 2027년까지는 500여개 브랜드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이미지와 텍스트 등을 동시에 분석해 변형된 상표와 이미지 합성수법을 정밀하게 탐지할 수 있도록 기술 고도화도 추진 중이다.
관련 부처 간 협업도 강화한다. 특허청은 AI로 탐지된 상품은 관세청에 통보해 국내로 유입되기 전에 차단될 수 있도록 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판매사이트의 접속차단과 해외사업자 게시물의 삭제를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부서별로 할 수 있는 역량과 영역이 다르지만, 정보 교류를 활성화해 통합대응 체계를 갖추자는 것이 목표"라며 "관세청, 농림부에 이어 각 부처와 MOU를 순차적으로 체결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7월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위조상품 유통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한바 있다. 이번 대책에는 그동안 명품 브랜드 중심의 위조품 단속이 K-브랜드 보호로 방점이 찍혔으며, SNS, 라이브 방송 등 은밀화된 유통 채널도 집중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위해 K브랜드 위조품 모니터링 지역은 중국·태국·인니·베트남·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6개국에서 인도까지 추가됐다. 또 상표권 침해에 대한 징벌배상을 최대 5배까지 확대 시행됐다.
'따로 또 같이'…"정보단절 줄여야"국내에서 지재권 보호와 위조품 유통 차단은 특허청과 관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경찰청 등이 나눠서 맡고 있다. 또 산업별로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모든 부처가 연관된다. 수입 통관 과정의 위조품은 관세청과 산하기관인 무역관련지식재산권보호협회(TIPA)가 단속하고, 국내에 유통되는 위조품과 국내 권리자들의 위조품 대응 지원은 특허청과 그 산하기관인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이 맡는다. 위조품 유통 방지 대책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수사와 단속은 경찰청이 담당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위조품에 속도감 있게 대응하고 국내 권리자들의 지재권을 효율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협업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별 연합이라는 특징이 반영되어 있지만) 위조품 단속의 선진국인 EU의 경우 브랜드사들이 IPEP 시스템에 상품 정보를 올리면 세관과 내수 감독기관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 브랜드사들이 느낄 피로함을 줄이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예산을 더 투입해 K브랜드 위조품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산업별로 ▲온라인모니터링지원 ▲해외 상표, 디자인 출원 지원 ▲컨설팅 등과 함께 대응책을 마련 중인데 협회 차원의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협회 관계자는 "K 브랜드들이 짝퉁이 늘어나고 있다 보니 이들의 지재권 보호를 지원해줄 수 있는 예산을 특허청에 여러 차례 요청하고 있지만 예산 확보가 안 되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지재권 보호와 위조품 소비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긴 했지만, 미국과 유럽과 비교하면 한참 낮다"고 꼬집었다.
실제 브랜드는 짝퉁이 제조·판매되는 해외 시장에서 적극적인 대응도 어렵다. 상표권 분쟁 과정에서의 막대한 소송비도 부담이지만, 현지 소비자들의 반감을 살 수 있어서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짝퉁이 해외에서 제작되기 때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소송을 위한 법적 비용을 알아봐야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부담스럽다"며 "사실상 실질적인 대응은 하지 못하고 짝퉁을 모니터링하는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상표권 분쟁에 휘말리면 현지 소비자(중국)들에게 혐한 정서가 형성돼 제품 판매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도용으로 인해 유무형의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지만, 매출 타격을 우려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